[다산칼럼]다산의 편지
외롭고 궁핍한 삶에 아랑곳하지 않고 치세와 제민에 관한 책을 편찬하는 틈틈이 채소를 가꾸고 뽕나무를 키우면서 터득한 것들도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혼자 지내는 내내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학연 · 학유)과 둘째형(정약전) 및 제자들에게 간곡한 내용의 편지를 썼다.
가장 많은 건 아들들에게 보낸 것으로 무엇보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채근한다. '집에 책이 없느냐,몸에 재주가 없느냐,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문장가가 되는 일은 꺼릴 게 없지 않으냐.'
그는 부디 기상을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꺾어선 안된다. 사나이는 가슴 속에 하늘로 치솟아오르는 가을매의 기상을 품고 천지를 작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 '
또 비밀을 만들지 말고 과음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술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데 있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토하고 잠에 곯아떨어지면 무슨 정취가 있겠느냐.술 좋아하는 사람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하는 수가 많다. …바라노니 딱 끊고 마시지 않도록 하라.'
둘째형에겐 부디 현실적이 되라고 조언했다. 섬의 들개를 잡아 먹으면 기운을 잃지 않을 거라며 요리법까지 상세히 적었다. '들깨 한 말을 부쳐드리니 볶아 가루로 만드십시오.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 '
영암군수 이종영에겐 이렇게 썼다. '상관이 엄한 말로 위협하는 것,간리가 조작한 비방으로 겁주는 것,재상이 부탁으로 나를 더럽히는 건 모두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이런 다산의 미공개 서한 13통이 새로 발견됐다고 한다. 다산의 편지는 어떤 처지에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가족은 물론 일반 백성과 함께 살아가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 이의 절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시대에 상관없이 가슴을 치는 이유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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