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정오가 좀 지난 시간.서병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이로써 1년여를 끌어 온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재정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한은에 물가안정 외 금융안정 기능을 부여하고 한은이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금융회사에 대한 단독조사권을 준 것이 골자다.

4시간여 지난 오후 4시반께.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안타깝고 유감이다"라는 반응을 내놨다. 금융위는 곧바로 브리핑을 열어 한은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고 금융위의 입장을 '금융위원장의 말씀'이란 자료로 정리해 배포했다. 잠시 후 오후 5시께 이번엔 금융권이 나섰다.

은행은 물론 증권 보험 등 2금융권을 망라하는 6개 금융협회장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은법 개정안을 성토했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김영선 위원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한은법 개정안에 대한 심사보류를 공식 요청했다. 이날 오후 한은도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한은법 개정안에 대해 이처럼 관련 정부 부처,기관,국회 상임위가 하나같이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밥그릇 싸움' 외 다른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게 한결같은 관전평이다.

우선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 및 조사를 '독점'하고 있는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이 분야에 대한 한은의 진출이 싫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한은이 조사권을 행사하면 금융권에 대한 낙하산 인사 공유를 한은이 요구해 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금융회사들도 한은의 간섭이 싫다는 반응이다. 지금도 금감원에다 금융위 기획재정부라는 세 명의 시어머니가 있어 지긋지긋한 판에 한은까지 추가된다면 일을 못할 지경이라는 얘기다. 감사 등의 자리를 금감원과 한은에 배분하는 것도 골치아픈 일이라는 게 속내다.

정무위도 금융위와 금감원을 통해 금융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독점'행사하고 있는데 재정위가 숟가락 놓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다. 재정위와 경쟁하면 정치자금 기부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재정위와 한은은 금융위기 예방을 위해선 불가피한 법안 개정이라고 말한다. 한은은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 따위는 할 생각조차 없다.

공은 국회 법사위로 넘어갔다. 금융회사라는 노른 자위를 두고 벌이는 이전투구에 대해 법사위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박준동 경제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