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9살, 여학생)는 아침에 알람이 울려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늘 그렇듯 아빠와 엄마와 함께 저녁 드라마까지 TV를 보고 자느라 늦은 취침시간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일어나면 꽉 막힌 욕실로 들어가 향긋한 꽃향기가 나는 비누와 샴푸로 몸을 씻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은혜의 등교 준비 시간의 반은 머리 손질에 소비된다. 은혜 또래들이 그렇듯 요즘 공주 놀이에 심취해 있어 얼마 전 엄마를 졸라 멋진 갈색으로 염색하고 공주님 풍으로 구불거리게 퍼머도 했다. 엄마 눈을 피해 헤어스프레이를 살짝 뿌려 볼 때도 많다. 수미 엄마는 아침은 꼭 밥을 챙겨 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강조했던 사항이라 다행히 수미는 아직까지는 지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밥은 꼭 먹고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날이 쌀쌀해진 것 같아 엄마는 몇일 전에 드라이클리닝해 둔 옷의 비닐포장을 벗기고 외투를 꺼내 챙겨 입혔다. 전쟁을 치루 듯 혼을 쏙 빼 놓으며 은혜는 등굣길에 오르고, 수미 엄마는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남은 음식은 나중에 데워 먹으려고 플라스틱 반찬통에 담아두었다. 식기는 주방세제로 설거지를 한다. 거품이 보글보글하게 나며 뽀드득 소리를 내며 식기를 닦아내야 마음이 개운해 지는 것 같다. 설거지를 마친 후 싱크대에서 개미 한 마리를 발견하고 은혜 엄마는 깜짝 놀라 벌레를 퇴치해 주는 개미 약을 뿌렸다. 이사를 오며 주방 곳곳에 배치해 두었던 살충제를 갈아줘야 하는가 하며 시장을 봐 올 목록에 살충제를 추가시켜 놓았다. 수미 엄마는 어제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와 수건들을 세탁기에 넣고 세탁 세제와 표백제, 섬유유연제를 넣고 스위치를 돌린다. 청소 후 음식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방향제는 집안 구석구석 뿌려주고 특히 아이들 방 침대는 더욱더 열심히 뿌리고 나서 이제 오전 일과는 대충 끝났구나는 푸념과 함께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마신다. 한편, 수미 학교에서 하루 평균 6시간을 보낸다. 하교 길에 늘어선 슈퍼에는 눈에 제일 잘 띄는 자리에 초콜릿, 크림빵, 컵젤리, 콜라, 사이다, 색색의 과자 들을 늘어놓고 얄궂은 모습으로 아이들을 유혹한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아이들은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문방구점에서도 캐릭터 모양의 잡다한 플라스틱 장난감들, 아이들용 메이크업세트들을 정신없이 구경한다. 집에 도착하면 책가방을 바꿔 들고 바로 학원으로 직행해야 한다. 학원 교재보다 먼저 가방에 챙겨 넣는 것은 바로 학교에서는 제어를 하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지 못했던 휴대용 게임기와 핸드폰이다. 확실히 아이들은 어른보다 작은 전자제품에 대한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이제는 아빠보다 핸드폰 문자 보내는 속도가 빠르고, 게임을 한번 시작하면 완전히 마스터 할 때까지 게임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학원수업은 학교에서보다 마음이 편하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큰소리 한번 내면 엄마가 고모, 할머니까지 끌고 와서 선생님에게 면담(?)을 청하는 시대라 아이들을 제어하기가 녹녹치 않다. 무엇을 배운 건지, 시간을 때 운건지 모르겠지만, 보습학원과 피아노학원, 태권도학원을 차례로 돌다 집으로 돌아간 지혜는 방에 가방을 던져놓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엄마가 저녁식사를 다 차려놓고 서너차례 불러야만 수미 미적미적 저녁상 앞에 앉는다. 오늘의 저녁식사 메뉴는 각종 나물들과 콩자반, 김치, 시래기국 그리고 수미를 위한 돈까스. 기름에 튀겨낸 돈가스나 햄류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한숟가락이라도 밥을 먹이자면 어쩔수 없다는 것이 지혜 엄마의 하소연이다. 토마토 케첩 등의 소스류를 잔뜩 뿌려 먹는 것은 물론이다. 나물과 콩자반에는 젓가락 한번 가지 않지만 ‘그래도, 아이를 위해 꼭꼭 챙겨 주기는 하지 않았는가!’라고 엄마 스스로 안심하도록 해 주는 필수 아이템이라 식탁에서 빠지지는 않는 메뉴이기는 하다. 들어가서 공부 좀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지혜는 TV 앞에 앉았다. 아빠가 퇴근길에 사 온 후라이드 치킨을 간식삼아 깔깔거리며 오락프로를 본다. TV 시청 시간 때문에 엄마와 매일 실갱이를 하는 것도 스트레스지만 지혜의 영원한 지원군 아빠가 담배를 입에 물고 옆에 붙어 있어 오늘은 그나마 수월히 넘길 듯 한 눈치다. 결국 오늘도 지혜는 1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이래도 당신의 아이가 성조숙증의 위험에 노출이 된 적이 없다고 할 것인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조숙증의 위험은 분명히 우리 생활 곳곳에 있다. 우리 아이들은 다양한 경로로 성조숙증의 위험 요소들과 접촉하게 된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고 있는 어른에 비해 아이들에게 위해가 더 크고 민감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이들의 뇌는 10대 중반까지 계속 성장하기 때문이다. 어른의 경우 세포 하나가 손상이 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아이들의 경우 세포 분열이 계속되기 때문에 손상된 세포가 분열되며 둘, 넷, 여덟, 열여섯 이상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 그 파장이 크다. 뇌세포들이 연결되는 부위인 시냅스가 늘어나는 동안 위험 요소들에 의해 잘못된 정보와 신호를 받게 되면 뇌의 신호를 전하는 신경 세포의 배열이 엉망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아이들은 아직 뇌와 혈관을 막아주는 보호막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들보다 유해 물질들에 더 취약 하기도 하다. 뇌 뿐만이 아니다. 성장기에는 중추 신경계 뿐 아니라 면역계, 호흡기관계, 생식기관계 등의 중요 내부 기관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각 단계마다 성조숙증의 위험 요소들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생식기능의 성장과 발전을 조절하는 호르몬 신호는 아주 복잡하기 때문에 호르몬 신호가 한번 교란되기 시작하면 여러 건강상의 문제가 올 수 있다. 같은 조건하에 있더라도 어른에 비해 아이들의 몸속에 들어가게 되는 성조숙증 위험 물질은 양적으로 보았을 때 월등히 많다. 아이들은 맨손과 입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음식 먹던 손으로 물건을 만지고, 다시 맨손을 이용해 음식을 먹는 경우도 많을 뿐 아니라 6세 이하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물건을 입에 가져가는 습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어른보다 호흡이 빨라 체중당 공기 흡입량이 스물세배나 많고, 물도 세배나 많이 먹으며 음식 섭취량도 체중당 어른의 두세배나 많아 어른을 기준으로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성조숙증으로 병원에 온 아이들의 부모는 ‘왜 하필이면 우리 아이가!’라며 마른 하늘아래서 날벼락을 맞은 표정을 한다. 성조숙증의 원인물질들에 대하여 설명을 하면 ‘요즘 안그런 아이들이 어디 있다고! 왜 우리 아이만!’ 이라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좋은 옷, 좋은 교육, 경제적인 풍요뿐만이 아니다. 가장 먼저 지켜 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아이의 건강이며 이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서정한의원 박기원 원장) 장익경기자 ikjang@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