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라는 이름이 발표됐을 때 세계는 물론 일본도 발칵 뒤집혔다. 대학 교수도 유명 연구소의 박사도 아닌 일개 중견기업(시마즈제작소)의 학사 출신 연구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다나카의 이력엔 내세울 만한 내용이라곤 없었다.

노벨상을 탈 때까지 그의 삶은 성공보다는 오히려 실패 쪽에 가까웠다. 일본 북부 도호쿠대학 전기공학부에 입학했지만 자신이 부모의 친자식이 아닌 조카인 걸 알고 방황하다 낙제했다. 1년 늦게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 대신 취업하기로 결정,가전업체(소니)에 지원했으나 떨어졌다.

면접에서 긴장한 게 이유였는데 실은 '유급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감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고백했다. 도리없이 지도교수를 찾아 추천받은 곳이 바로 시마즈제작소였다. 입사는 했지만 원하던 부서에 배치받지 못했다. 당시 심정을 그는 자서전 '일의 즐거움'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의용 사업부를 희망했으나 중앙연구소로 배치됐다. 솔직히 낙담했지만 실제 일을 해보니 좋아하는 실험을 온종일 할 수 있어 마음에 쏙 들었다. 바로 옆에서 의료진단용 MRI를 개발중이었다.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어 언젠가 그쪽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곤 했다. '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문제가 닥쳤을 때도,바라던 사안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도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고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며 즐거움을 찾아냈던 셈이다. 그는 또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의기소침하거나 실패했다고 단정짓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능시험 결과 발표일이다. 예상보다 성적이 잘 나온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단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갈리고 입학할 수 있는 대학도 달라지는 게 현실이다. 점수가 뜻같지 않으면 눈앞이 캄캄할 게 틀림없다. 내신 성적이 여의치 않아 수능점수에 주로 의존해야 하거나 이미 한번 실패한 재수생인 경우 실로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다나카의 삶에서 보듯 성공은 실패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는 자,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을 사랑하면서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꿈을 향해 쉼없이 나아가는 자의 몫이다. 인생을 좌우하는 한 끗은 수능 한 등급이 아니라 살면서 무수히 부딪치는 벽 앞에서 부서지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용기와 실천력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