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는 고아한 꽃,깊은 향기,절개의 상징성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백미로 손꼽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춘란이다. 한국 춘란의 잎과 봄에 피는 꽃의 특별한 기품은 그 어떤 꽃에 비길 바가 아니다.

필자가 난의 포로가 된 것은 십수년 전 주로 사람을 만나고 글 쓰는 일을 할 때다. 선물로 받은 난을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일상을 벗어난 평온함을 발견한 것이다. 직장 선배의 소개로 춘란에 눈을 뜨고 아란회의 회원이 된 것도 벌써 10여년이 넘었다. 아란회는 27년 전인 1982년 결성됐다. 1986년 3월 첫 전시회를 열었다. 전국에 많은 난 동호회가 있지만 아란회는 오랜 내력과 순수한 난 사랑으로 정평이 나있다.

분에 심은 춘란이 기품을 제대로 내도록 키우는 것은 정성과 함께 기다림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다. 이 취미는 그러나 끊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애지중지하던 난을 나눠주고 3년간의 해외근무를 떠났던 것이 2003년의 일이다. 2006년 귀국 후 불과 3년여 만에 집사람의 눈총 속에 늘어난 난분이 벌써 100여개를 웃돈다. 아란회를 통해 회원들과 나누는 즐거움이 지렛대 역할을 했다.

아란회 회원 50여명은 매월 월례회를 통해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나누고,매년 봄 전시회와 품평회를 열어 한 해 동안 쏟은 정성을 선보인다. 2년 전에 만들어진 카페는 정보교류에 더없이 좋아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회원도 적지 않다. 성남에 위치한 공동배양장에선 수시 모임이 이뤄진다. 배진수 회장(변호사),정종판 · 이정수 전 회장,곽진우 총무(국악인),김영세 총무(회사원),임정규 회원(꽃집 경영),김호상 회원(은행원),이재영 회원(강남우체국)을 비롯한 마니아급 회원들이 아파트에서 기르던 난초를 이곳으로 옮겨 배양하는 곳인데,필자도 합류했다.

배양장이래야 허름한 비닐하우스지만 이곳에는 아란회의 명예를 걸고 명명한 '월하금' '월하선' '도홍' '정원' '금하' '청맥' '연지곤지' 등이 예(藝)를 뽐내고 있다. 주말이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대여섯 명의 회원이 모여 난담(蘭談)을 나눈다. 지난 주말 해질 무렵에는 갑작스런 추위에도 불구하고 카페에서 자연사랑이란 닉네임으로 맹활약하는 최정해 회원과 난사랑이 은근한 이성희 회원(기업인),늘 웃는 얼굴의 염이용 회원(기업인) 등 반가운 사람들이 모여 일군을 이루었다. 모임은 가끔 바둑 · 장기대회로 이어지고,녹슨 당구 실력으로 자웅을 가리는 일도 벌어져 즐거움을 더한다.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치가 좋은 인근 인능산을 즐겨 오른다.

공동재배장 옆 텃밭을 이용한 무공해 채소 재배는 난에 무심한 가족들이 반기는 일이다. 지난 여름 회원들이 함께 심은 상추는 대가 벌거숭이가 될 정도로 인기였고,오이 호박은 제대로 크기도 전에 행방불명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필자 또한 이곳에서 호박잎을 따고,고구마와 김장 배추를 조달한다.

아란회는 나이,직업,출신 등을 모두 떠나 순전히 난이 좋아 모인 사람들이다. 그윽한 향기를 난뿐만 아니라 회원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 지란지교(芝蘭之交)의 모임이다. 난 향기와 함께 삶의 향기가 숨쉬는 동호회이기에 춘란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회원 가입을 주저없이 권하고 싶다.

/박진달 아란회 회원(한국무역협회 홍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