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북한은 지난 주 구화폐와 신화폐를 100:1의 비율로 교환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은행 제도 밖에 있는 돈을 은행 제도 내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외화벌이꾼과 시장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머지는 이들이 번 돈에 거의 얹혀살다시피 하고 있다. 관료들의 상당수는 뇌물이나 상납금을 받아 살고 다수의 기업들은 출근을 면해 주는 대가로 시장에서 돈을 벌어 기업에 바치는 이른바 8.3노동자의 돈으로 버티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소득 중 3분의 2 이상은 정부나 기업에서 받는 월급이 아니라 시장에서 장사로 벌어들인 수입이다.

가계는 벌어들인 돈을 은행에 예금하려 하지 않는다. 정부를 불신하고 은행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탈북자 수백명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평생 한 번이라도 은행 예금을 했다는 사람들이 10%에 미치지 않는다. 이는 돈이 기업부문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국가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비계획부문에서만 돌고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위기로 정부의 곳간도 비어 있다. 사회주의 정부의 경제통제력을 보여주는 GDP 대비 재정수입은 2003년 이후 그 이전에 비해 적어도 절반 이하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수입이 없으니 정부는 계획경제를 제대로 운용할 수가 없다. 궁지에 몰린 북한 정부는 재정 대신 은행 대출로 기업에 재원을 공급하기 위해 2006년 상업은행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예금이 들어오지 않으니 상업은행을 만들 수조차 없었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이번의 화폐개혁 목적은 뚜렷해진다.

그러면 이 개혁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은행으로 들어오는 돈의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소득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불법적으로 벌었을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예금할 것인가,아니면 돈을 잃어버릴 것인가 사이에서 목숨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으로 환수된 돈이 기업으로 대출된다고 해도 사유권이 존재하지 않고 거래의 자유가 제한된 경제에서 그 돈의 효과도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만약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했다면 이는 경제학 지식이 부족한 소치이다. 화폐개혁은 물가수준을 떨어뜨림으로써 단 한번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북한의 높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공급은 부족한 반면 재정이나 은행,기업 부문에서 화폐가 증발되기 때문이다. 화폐량이 많다는 것은 잘못된 경제의 증상이지 경제를 왜곡시키는 근본 원인은 아니다.

화폐개혁으로 시장을 축소시켜 사회주의 정권을 안정시키려 했다면 이는 북한 당국의 정치경제학 지식이 거의 백치 수준임을 암시한다.

이번 화폐개혁으로 큰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겨우 생존하는 서민들과 체제에 비교적 충실한 사람들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화폐를 달러나 위안화로 보유하기 때문이다. 이 서민들에게서 시장이라는 생계수단을 빼앗은 대가는 원망과 분노로 되돌아올 것이다. 체제에 충실해 북한 원화로 돈을 보유한 사람들은 배신감으로 치를 떨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김정운이 권력을 세습한다면 그는 더 적은 힘으로 더 성난 민심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김정일은 잘못된 버튼을 눌렀다. 그는 정치 게임에는 능한지 모르나 경제는 너무 모른다. 그러나 그의 과감한 무지는 북한 정권에도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김병연 < 서울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