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소비되는 것은 생산물이 아니라 기호이다”

[실전 고전읽기] 45. 장 보드리야르「소비의 사회」
사람들에게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을 던지면 사실 시큰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I shop,therefore I am)"라는 명제에는 모두들 반짝이는 눈빛으로 긍정하지 않을까?

현대는 소비의 꿈과 욕망이 사회 전반을 지배한다.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내 차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러한 재미있는 광고들은 소비의 주술에 걸린 물신숭배 사회를 새삼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물질과잉의 현대사회를 견인하는 원동력이 실제로는 전혀 '물질적이지 않은 소비'라는 주장이 있다.

2007년 타계한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그의 저작,'소비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소비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의 계급질서와 상징적 체계'라고 진단하였다.

사람들은 생산된 물건의 기능을 따지지 않고 상품이 상징하는 위세와 권위,즉 기호를 소비한다는 주장이다.

기존의 사회학과 철학의 테두리를 거부하면서 현대사회의 연구에 몰두했던 보드리야르는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독자적인 행보를 하면서,'소비의 사회(1970)'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972)' '생산의 거울(1973)'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1981)' '완전범죄(1995)''테러리즘의 정신(2002)' 등을 비롯한 수십 권의 저서를 집필하고 세계 유수의 다양한 학술지와 웹진 등에 꾸준히 기고하는 등 활발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의 다채로운 활동은 대중과 대중문화,미디어와 소비사회에 대한 이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그에게 붙은 꼬리표에서 '기호'라든가 '시뮬라시옹'이라는 말이 가장 도드라지게 쓰여있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실재가 이미지와 기호의 안갯속으로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 유명한 명제는 시뮬라시옹 시대에 사물의 내재적 실체성이 증발해 버린다는 점을 꼬집은 것인데,보드리야르는 묘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시뮬라시옹(Simualtion) 이론을 소비사회 진단에 활용하며,우리사회에서 소비되는 것은 생산물이 아니라 기호라고 분석하였다.

현대사회에서 발견되는 기호적 장악력과 그로 인한 사회 전반적인 물화를 예리하게 파헤친 보드리야르는 탁월한 통찰력과 날카로우면서도 신랄한 필체를 자랑하고 현대인들은 사물에 의한 구원을 찾으면서 소비의 계급적 제도에 순종한다고 비판하였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접어들며 그의 주요 저작인 '소비의 사회' '기호의 정치 경제학 비판' '생산의 거울' '시뮬라시옹'이 소개되며 인문학과 사회학 분야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그 결과 논술시험에서도 보드리야르의 글은 단연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소비의 사회'는 논술에서 너무나 많이 인용되었기에 지면상 출제된 제시문을 모두 정리하기에는 곤란하니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된 제시문을 간략히 소개하기로 하겠다.

☞ 기출 제시문 1 (고려대학교 2003학년도 수시논술)

소비는 형식적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것보다는 개인 수준의 욕구와 무질서에 맡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아노미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소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불확정적이고 주변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행동이며,강제이고 도덕이며 제도이다.

소비는 하나의 가치 체계이며,체계가 포함하는 집단 통합 및 사회 통제 기능의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다.

소비 사회는 소비를 학습하는 사회이기도 하며,소비에 대해 사회적 훈련을 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 기출 제시문 2 (이화여자대학교 2004학년도 정시 논술)

소비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상품의 논리가 일반화되어 노동과정이나 물질적 생산품뿐만 아니라 문화,섹슈얼리티,인간관계,심지어 환상과 개인적 욕망까지 지배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데,그것은 단순히 모든 기능과 욕구가 이윤에 의해 대상화되고 조작된다고 하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진열되어 구경거리가 된다는,즉 이미지,기호,소비 가능한 모델로 환기되고 유발되고 편성된다는 보다 깊은 의미에서이다.

소비과정은 기호를 흡수하고 기호에 의해 흡수되는 과정이다.

기호의 발신과 수신만이 있을 뿐이며 개인으로서의 존재는 기호의 조작과 계산속에서 소멸한다.

소비시대의 인간은 자기 노동의 생산물뿐만 아니라 자기 욕구조차 직시하는 일이 없으며 자신의 모습과 마주 대하는 일도 없다.

그는 자신이 늘어놓은 기호들 속에 내재할 뿐이다.

초월성도 궁극성도 목적성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이 사회의 특징은 '반성'의 부재,자신에 대한 시각의 부재이다.

현대의 질서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장소였던 거울은 사라지고,대신 쇼 윈도만이 존재한다.

거기에서 개인은 자신을 비춰보는 것이 아니라 대량의 기호화된 사물을 응시할 따름이며,사회적 지위 등을 의미하는 기호의 질서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소비의 주체는 기호의 질서이다.

소비의 가장 아름다운 대상은 육체이다.

오늘날 육체는 광고,패션,대중문화 등 모든 곳에 범람하고 있다.

육체를 둘러싼 위생,영양,의료와 관련한 숭배의식,젊음,우아함,남자다움 혹은 여자다움에 대한 강박관념,미용,건강,날씬함을 위한 식이요법,이것들 모두는 육체가 구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육체는 영혼이 담당했던 도덕적,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문자 그대로 넘겨받았다.

오늘날 육체는 주체의 자율적인 목적에 따라서가 아니라,소비사회의 규범인 향락과 쾌락주의적 이윤창출의 원리에 따라서 다시금 만들어진다.

이제 육체는 관리의 대상이 된다.

육체는 투자를 위한 자산처럼 다루어지고,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여러 기호 중의 하나로서 조작된다.

☞ 기출 제시문 3 (고려대학교 2008학년도 모의논술 : 고려대학교 측에서 출제의도에 맞게끔 원문을 발췌 · 편집함)

일반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는 모든 물질적 필요가 쉽게 충족되는 사회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이 관념은 진정한 '사회적 논리'를 전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우리는 마셜 살린스가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에 관한 논문에서 주장한 견해를 따라야 한다.

살린스에 따르면,몇몇 원시 사회의 경우와 달리 현대의 생산지상주의적 산업사회는 희소성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즉 시장경제의 특징인 희소성이라는 강박관념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다.

풍요로움이라 불릴 수 있는 상태는 인간에 의한 생산과 인간이 지니는 목적이 일치하는 균형 상태다.

그런데 인간은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넘쳐나는 생산품들 속에서도,그런 풍요로움의 상태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점점 더 멀어진다.

성장 사회가 충족시키는 것,그 사회에서 생산성이 증가함에 따라 점차 더 충족되는 것은 생산의 명령에 따른 필요이지 인간의 '필요'가 아니다.

실제로 성장 사회의 존립은 인간의 필요에 대한 무지에 기초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 사회에서 풍요로움은 한없이 뒤편으로 물러서고,그 대신 희소성이 사회를 조직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중략…)

현대인의 체계가 갖는 특징은 인간이 쓸 수 있는 수단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에 대한 절망감,그리고 시장경제와 보편적 경쟁의 결과로 발생하는 근본적이고 파국적인 불안감이다.

이 특징은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더 뚜렷해진다.

원시 사회의 특징은 집단 전체적으로 실행되는 '장래를 생각하지 않음'과 '아낌없이 낭비함'이다.

이것이 진정한 풍요로움의 표시다.

반면 우리는 풍요로움의 기호(記號)만을 갖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생산체계 속에 빈곤과 희소성의 기호를 몰아넣고 마음 졸이며 그것을 주시한다.

그러나 살린스가 말한 바와 같이,빈곤은 재화의 양이 적은 데 있는 것이 아니며,또 단순히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서만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빈곤은 무엇보다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다. (…중략…)

현대의 '차별화' 사회에서 모든 사회관계는 개인의 결핍감을 증대시킨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에서 소유물은 다른 것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상대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의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풍요로움이 상실되었으며,그 잃어버린 풍요로움은 생산성을 한없이 증대해도,새로운 생산력의 고삐를 풀어도,다시 찾아질 수 없다.

풍요로움과 부는 사회조직 안에서 구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사회조직과 사회관계가 완전히 변화되어야만 생겨날 수 있다.

우리가 시장경제를 넘어 아낌없는 낭비로 돌아갈 날이 있을까?

우리에게는 낭비가 아니라 '소비'가 있다.

그것은 영구히 지속하는 강요된 소비요,희소성의 쌍둥이 자매다.

원시인들에게 최초의,그리고 유일한 풍요로운 사회를 체험하게 한 것은 그들의 사회적 논리였다.

우리를 호화스러운 빈곤 속에서 살도록 하는 것도 우리 자신의 사회적 논리다.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