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간 제약업체들이 다 죽습니다. "(A제약 영업담당 전무)

제약업계가 '패닉(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의약품 저가구매인센티브제'가 최근 시행 쪽으로 빠르게 가닥을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업체의 한 임원은 "정부가 TFT팀 활동을 철저히 비밀로 해 궁금증만 컸다"며 "막상 눈앞에 닥치고 보니 마치 '쓰나미'에 휩쓸리는 분위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는 보험재정 절감과 리베이트 근절이라는 공익적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제약산업 전체의 성장동력을 한꺼번에 무력화할 수 있는 제도의 파괴력으로 인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미 시행 중인 약가인하 제도만으로도 부담이 큰데 저가구매인센티브제까지 시행할 경우 자칫 산업 전체가 황폐해지는 '소탐대실'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6년 '5 · 3약제비적정화' 발표 이후 건강보험재정 확충을 명분으로 여섯 가지 의약품 약가 인하 장치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실거래 사후관리를 통한 약가 일괄인하'를 비롯해 △국제 거래가격 비교 통한 정기약가 인하(3년에 1회) △특허만료시 오리지널 약품 20% 인하 및 제네릭 추가 인하 △경제성 평가에 따른 기등재 의약품 일괄 인하 △처방량 과다 약품의 약가 인하 △리베이트 적발시 최고 44% 약가 인하 등이다. 이 제도만으로도 연간 약 5000억원 이상의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는 게 제약업계 측의 판단이다.

문경태 한국제약협회 부회장은 "여기에 최근 정부가 병의원에 제시한 의료계의 약제비 절감 목표치 4000억원이 추가된 데다,저가구매인센티브제까지 도입되면 업계의 전체 매출(10조원) 가운데 약 20%인 연간 2조원이 줄어든다는 게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분석"이라고 지적했다.


한 제약사 대표는 "그동안 한 · 미FTA(자유무역협정) 인준에 대비해 연구개발 비중 확대와 cGMP(선진국표준 의약품 관리규정) 규격 생산시설 확충에 업계에서 수천억원 이상을 투자해왔는데,이젠 더 이상 글로벌 경쟁력 강화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리베이트를 잡겠다는 목표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김선호 제약협회 홍보실장은 "제약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오히려 병의원들을 상대로 정부의 인센티브보다 더 큰 반대급부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며 "병의원과 제약업체 간 이면계약 형태의 새로운 리베이트가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2001년 이후 복지부 내부에서도 이런 이유로 여러 차례 저가구매인센티브제 도입이 무산됐다고 업계는 지적했다. 한 전직 복지부 고위관리는 "정부정책으로서의 격(格)을 갖추지 못했다는 자체 평가에 따라 실무선에서 폐기됐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약품을 실거래가로 신고하는 것은 병의원의 당연한 의무인데,이를 인센티브로 유도하는 것은 '도둑 잡은 경찰을 포상하는 격'이라는 지적이 잇따랐기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의사협회와 병의원 협회 등은 저가구매인센티브제를 환영하는 입장이어서 제도의 실제 도입까지는 각 이해 단체 간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의약품 가격을 낮출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인 데다,환자들도 약값을 적게 부담할 수 있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