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지휘봉을 들고 강의하면서 깨달은 것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으로 인해 수업 태도가 안 좋은 학생에게 부당하게 힘(?)을 사용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 후부터 강의 시간에 지휘봉을 지참하지 않기로 했다. 정당한 권한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주어지면 그것을 권력수단처럼 행사하려 하는 본능 같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됐다.

보도에 의하면,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내년부터 전국의 '우수'학부모회를 선정해 총 100억원의 활동비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 차관은 최근 "교육소비자인 학부모 중심의 교육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연간 2회씩 의무적으로 학부모회가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종합적인 학부모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라며 "학부모 활동이 활발해지면 공교육의 질도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극성 학부모들의 '치맛바람'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보다 정부의 지원조치 언급이 지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은 교육당국의 정책을 견제해야 할 학부모회의 순수한 활동을 국가권력의 시혜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다. 자칫 권한의 영역을 넘어서 지나친 권력행사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는 것이다.

첫째,이번 교육당국의 학부모회 활동 지원조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공약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자율과 경쟁을 존중하고자 한다면,학부모회 활동을 순수한 NGO 활동으로 보고 국가가 지원금으로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둘째,학부모 중심의 교육정책이 나오게 하려면,국가가 나서서 지원책 등 '당근'을 가지고 채근할 것이 아니라 교육수요자인 학부모가 만족할 수 있는 각종 교육규제와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학교의 학생선발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다양한 학교를 만든다고 하면서,특목고나 자율고 선발을 추첨으로 한다는 등 실질적인 선발권이 없는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수요자 중심 교육정책이다. 또한 교육수요자 중심이라는 명분으로 주어진 지원금이 오히려 학부모의 선택을 가로막는 정책을 지지하는 단체에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셋째,학부모회 지원은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진다. 이는 학부모 단체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을 맺는다. 학부모회를 모체로 하는 일부 학부모단체는 특정 사안에 대해 특정정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교육문제가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된다. 예컨대 학교급식을 직영으로 하자거나 무상으로 하자는 학부모 단체와 이에 반대하는 단체를 두고 어느 한쪽에 당국의 지원이 갔을 경우,정치적 편파 논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어느 학부모단체는 특정 정치인의 권력도구로 변질된 경우도 있다.

넷째,학부모 단체의 대표성 문제도 있다. 대다수의 침묵하는 학부모가 동감하듯이,일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학부모 단체가 학부모들을 대표하거나 대변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흔히 접하듯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니 교육의 전문성 확보라는 명분은 자칫 대다수 학부모 의사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가기 십상이다.

상황이 이럴진대,교과부의 발상은 결국 학부모의 선택권은 그대로 봉쇄시켜 놓고,그에 대한 반대급부만 주는 모양새이다. 이 점에서 '시혜'처럼 주어지는 학부모회 지원금은 여러 폐해를 낳는 정부보조금과 다를 바 없다. 교육당국의 권한을 시혜처럼 보지 않고 학부모의 권리를 진정으로 존중하고자 한다면 평준화를 폐지하는 등 학교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일이다. 또 증세까지 하면서 이런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자율'과 배치되는 권력행사이다.

김정래 <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