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중국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전략을 도입,정부 부처와 연구기관은 물론 국내외 경쟁기업들과도 전방위 제휴를 추진하기로 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최근 그룹 연구개발(R&D)위원회 등을 통해 "업종,회사간 장벽을 허물고 아이디어와 기술 제휴를 통해 중국 시장을 뚫는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 같은 중국진출 전략을 각 계열사에 전달한 것으로 1일 알려졌다. SK는 이를 위해 당초 2012년까지 R&D 분야에 5조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던 연초 계획을 수정,투자규모를 7조~8조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SK그룹은 신흥 경쟁국의 부상과 기술융합화 트렌드로 도전을 맞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술 중심의 성장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처기업 · 연구소 · 정부기관과 '공동전선' 구축

'오픈 이노베이션'은 2003년 미국 UC버클리대의 헨리 체스브루 교수가 제시한 혁신이론이다. 제품 아이디어와 기술을 내부의 R&D 조직뿐 아니라 영업 등 다른 조직이나 외부기업의 노하우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미국,유럽 등의 기업들은 이같은 방식을 활용해 외부에서 개발된 뒤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온 기술을 도입하거나 경쟁사와의 공동 연구 개발을 추진,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늘려나가고 있다.

SK는 이 방안을 채택,외부 기업 및 기관 등과의 제휴를 통해 기술개발 경로를 다양화하기로 했다. SK텔레콤,에너지,브로드밴드 등 주요 계열사들이 지난해 말부터 벤처펀드에 2000억원가량을 투자,기술 확보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SK가 이 같은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은 10여년에 걸친 중국 진출의 성과가 아직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SK텔레콤,에너지 등 주요 계열사들이 중국 현지기업에 지분을 투자한 뒤 사업권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해왔지만,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까다로운 인 · 허가 절차에 가로막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SK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기술개발에 주력하기보다는 현지 기업의 지분 참여를 통해 사업 기회를 엿보는 한국식 기업성장 모델에 안주했던 게 사실"이라며 "기업이나 사업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해 먼저 내세울 만한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현지시장 공략에 훨씬 효과적인 해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2차 전지 · 촉매기술 분야에 적용키로

SK그룹은 차세대 역점사업인 자동차용 배터리 분야에 '열린 공동 전선' 전략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10월 SK에너지와 중 · 대형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리튬이온전지 공급계약을 체결한 미쓰비시 후소를 비롯해 현지업체 등과의 협력을 통해 성장세가 가파른 중국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것.미쓰비시 후소는 독일 다임러그룹 계열의 상용차 업체다.

최근 중국 수출에 물꼬를 튼 SK에너지의 화학 촉매기술도 외부기업과 공동전선을 구축,현지 공략을 더욱 가속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미국 엔지니어링업체인 KBR와의 기술제휴를 강화할 방침이다.

이미 테스트베드(test bed)는 확보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SK측은 보고 있다. SK텔레콤이 중국 현지업체 이아이(E-eye) 까오신과 개발한 자동차 · 휴대폰 연동 서비스인 모바일텔레매틱스(MIV) 기술이 대표적인 사례다.

SK텔레콤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이 기술은 다음 달부터 중국에 적용된다. SK텔레콤과 SKC가 벤처기업 등과 공동 개발해 지난 9월 베이징 정보통신 전시회에서 선보인 '전자종이(e-paper)'도 10년 정도 먼저 기술개발에 뛰어든 경쟁업체와의 기술격차를 좁힌 성과로 꼽힌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