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4개 정유사들은 올 한 해 정제마진 악화로 인한 실적부진에 고전했다. 하지만 비주력 사업이었던 화학부문은 호조세를 보이며 실적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정유사들은 올 들어 3분기까지 석유정제사업에서 모두 적자(누적실적 기준)를 냈다. 싱가포르 현물시장 기준으로 휘발유 단순(1차) 정제마진은 작년 4월 배럴당 -1.42달러에서 지난달에는 -4.31달러까지 떨어졌다. 원유 1배럴을 정제해 석유제품을 만들 때마다 4.31달러씩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정제마진이 맥을 못추는 이유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은 제자리인데 원유 값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단순정제 손실을 상쇄하던 고도화설비의 2차(값싼 벙커C유를 휘발유 등 경질유로 바꾸는 것) 정제마진도 지난 3월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지난 10월 배럴당 -3.55달러까지 하락,정유업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석유정제사업과 달리 석유화학 부문은 호황을 이어갔다. 중국의 경기부양책 등으로 일부 화학제품 공급이 달리면서 국제가격이 뛰었고,인도 베트남지역의 석유화학 공장들이 상반기 정기 보수에 들어가면서 공급량이 감소한 것도 국내 정유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SK에너지는 지난 3분기에 분기 기준 최대 수준인 178만t 규모의 석유화학제품을 중국 등에 수출하면서 2조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페트병 원료인 TPA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파라자일렌을 비롯해 합성수지 원료인 벤젠 · 톨루엔 · 자일렌(BTX) 제품 판매가 호조를 보인 덕분이다.

GS칼텍스 역시 BTX 사업 호조로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석유화학사업 영업이익이 석유사업의 영업이익을 앞질렀다. 두 회사 3분기 윤활유사업 등을 포함한 전체 영업이익이 각각 820억원(SK에너지),146억원(GS칼텍스)을 기록한 것도 매출액 대비 20~30%에 이르는 석유화학부문이 주된 역할을 했다.

석유화학 시황이 호전되면서 국내 정유사들은 발빠르게 화학부문 설비 투자에 나서고 있다. 에쓰오일은 총 1조4000억원을 투입,화학제품 생산 설비를 증설키로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일본 코스모석유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2013년까지 BTX 생산규모를 140만t까지 늘리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제품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화학사업부문 수익이 정유사의 실적을 좌우하는 상황은 이어질 것"이라며 "석유화학 생산 시설 증설 및 고도화에 대한 투자도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