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어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노동문제 핵심 현안의 하나인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문제와 관련해 "준비 기간을 달라"며 시행 유예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임자 임금 문제는 조직 내에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마련해 노조 스스로 개혁(改革)해 나가겠으니 현실적 대안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를 달라는 것이다.

장 위원장의 요구는 내년부터 법을 시행하겠다는 정부를 향해 내놓은 나름대로의 타협책으로 보인다. 전임자 문제는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에서 아예 이 조항을 빼자고 했던 것에 비하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노조 전임자 급여를 부담할 수 있도록 조합 재정 확충에 노력하고 전임자 수가 지나치지 않게 해 노사상생을 촉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제도개선 특별위원회에 중립적 전문가도 참여시키겠다"고 한 점 등에서 그런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장 위원장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눈앞으로 다가온 법 시행을 일단 유예시켜 놓고 보자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밖에는 생각하기 힘든 까닭이다. 이를 수용치 않을 경우 한노총과의 정책연대가 파기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즉각 수용 거부 방침을 밝히고 내년 시행 계획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지난 1997년에 이미 법제화하고서도 13년간이나 시행을 미뤄온 만큼 노동계로서도 충분한 준비 기간이 있었던 사안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또다시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며 시행을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관행을 지속하는 것은 전임자 숫자를 필요 이상으로 늘리고 노동운동을 한층 과격하게 만드는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다만 복수노조 폐지 주장은 산업현장의 혼란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장 위원장도 공감하는 전임자 무임금 제도라면 일단 시행에 옮기는 게 옳다. 재원이 부족한 영세사업장 등에 대한 보완책은 법을 시행하면서 마련해도 결코 늦지 않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