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도에 굴지의 자동차 기업의 사장단과 담소를 나눈 일이 있다. 두 분 모두,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에 최고의 학과를 나온 인재들이었다. 그분들의 관심사는 한결 같았다.
‘몇 대 더 팔 것인가!’
이을 위해 좀 더 싸게, 빨리 만드는 묘수를 찾고 있었다. 다시 말해 경쟁 업체나 해외 업체보다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그 기업은 곧 사양길로 들어섰다. 시쳇말로 88년도부터 기업의 프레임은 완전히 바뀌었는데, 이 기업의 고위 간부들은 생산성위주에서 마케팅 위주로 급변한 사실을 외면한 채 옛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성은 공장장이나 생산직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경영진들은 시장의 변화를 주시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했다. 국민들의 생활양식이 어떻게 바뀔 것이며, 정치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누구보다 예지적인 자세로 무장해야 했었다.

옛날 가수들은 노래만 잘하면 됐지만, 최근 가수들은 가창력만으론 절대 부족하다. 리듬, 안무는 물론이고 머리 모양, 옷맵시까지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콘으로써 전문가에게 점검을 받아야한다. 문화라는 것이 뒤지면 사멸하지만 너무 앞서도 안 된다. 반발 앞서면 유행이지만, 한발 앞서면 엽기가 되니까.

하루 자고나면 바뀌는 세상이다. 그 반작용으로 느리게, 여유 있게 사는 생활법이 떠오를 정도다. 이제 현대인의 필수 조건이 하나 더 늘었다. 변화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문화마인드’. 변화를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마음.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세상은 팽팽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커다란 덩어리는 그 뒤를 쫒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다.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형식은 수천 년 옛것을 고집하고 있다. 문화 선지자라면 누군가 그 험한 개척의 길을 솔선해야할 것이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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