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애창곡은 노사연씨의 '만남'이다. 음정의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부르기에 무난하고 가사 내용이 마음에 든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었어~'하는 대목은 사랑을 추억하는 유행가치고는 상당히 심오한 느낌을 준다. 젊을 때는 어니언스의 '편지'도 자주 불렀다. 두 노래는 사랑의 노래지만 연애와는 거리가 멀어진 이 즈음에 나름으로 생각해 보니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부모가 주신 형제 자매와 가족들,학교 동문,군복무 시절의 전우들,처가식구들, 직장 선후배,일 때문에 알게 된 사람 등.누구나 한번쯤 연하장이나 청첩장을 준비하다가 나와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 알게 된 사람의 수와 범위에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만남 중에는 내 선택에 의해서 만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상황에서 시작된 만남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삶의 오묘함을 느끼게 된다.

코란에 이런 얘기가 있다고 한다. 3인조로 강도질을 하던 한 남자와 그 아들,그리고 그 남자의 처남이 잡혀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처형하기 전에 술탄(이슬람 지배자)이 강도 두목의 부인에게 세 명 중 한 명을 살려 줄 테니 고르라고 하자 자신의 남동생을 골랐다. 그 이유를 묻자 남편과 아들은 자신이 선택하거나 낳았지만 동생은 부모가 내려 주신 것이라 한번 잃으면 다시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에 감복한 술탄이 모두를 용서해 주었다는 얘기다. 처음 읽었을 땐 참 기묘한 논리라고 생각했지만,자기가 만든 관계보다 주어진 인연을 더 귀중하게 여기라는 점을 깨우쳐 준 것 같다. 모든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숙겁의 관계에 뿌리를 둔 것임을 강조하는 불가(佛家)의 가르침과도 맥을 같이한다.

형제자매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만남은 우리의 선택에 따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어진 만남을 어떠한 모양으로 이어나가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건강과 장수의 연관성에 대한 외국의 어떤 연구에서 DNA,흡연,음주,운동,환경 등 여러 요소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나이가 들수록 친구의 수가 건강장수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또 좋은 인연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으니 굳이 인연의 철학을 따지지 않아도 모든 만남을 선연(善緣)으로 이어가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당연히 원하는 바이리라.하지만 시간과 정력에 한계가 있는 것도 현실인지라,만남의 적정한 관리에 고심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모임에 과도하게 신경쓰다 보면 생활이 부실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연말이 다가오고 각종 송년모임이 생기면서 만남과 인연의 관리에 대한 황금률이 더욱 아쉬워진다. 신년에는 그 황금률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 정답을 찾을 수 있다면 가히 도(道)를 얻었다 할지도 모르겠다.

박철원 < 에스텍시스템 회장 cwpark@s-te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