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에선 인간이 본능적으로 관음증적 경향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이를 통제할 수 있으면 관계 없지만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증세가 6개월 이상 지속되면 성적 도착증으로 간주한다. 또 신체의 일부를 남에게 보여줌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노출증적 경향도 본능으로 여긴다. 이 역시 자기억제가 잘 안되고 도를 벗어날 경우 병으로 진단한다. 관음증이 남성에게 빈번하게 나타나는 반면 노출증은 여성에게 많다는 게 특징이다. 남자든 여자든 이성의 누드사진을 볼 때 동공이 가장 크게 열린다는 실험결과도 같은 맥락이다.

따지고 보면 패션의 상당부분도 이 같은 인간의 본능에 기댄다고 할 수 있다. 미니스커트나 핫팬츠,란제리 룩처럼 대놓고 노출을 지향하는 옷이 아니더라도 어느 부분을 얼마나 보여줌으로써 타인의 눈길을 사로잡느냐가 디자인의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한다. 영화나 TV프로그램에서 양념 처럼 노출장면이 들어가는 것도 다 인간의 본능과 관계가 있는 셈이다.

여성들이 신체의 40%를 노출할 때 남성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리즈 대학 심리학과 연구진은 무도회장에 노출 정도가 서로 다른 옷차림을 한 여성들을 들여보내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접근하는지를 관찰했다. 노출 정도는 전체를 팔 20%,다리 30%,상체 50%로 보고 계산했다. 그랬더니 몸의 약 40%를 드러낸 여성들이 거의 노출하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2배나 많은 남자들의 춤 요청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미있는 것은 40% 이상 노출했을 때는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는 점이다. 과다노출은 매력보다는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신호로 인식된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어느 정도의 노출이 규범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매력적으로 보이느냐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1973년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치마가 무릎 위 15㎝만 올라가도 '망측하다'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 많아 경범죄로 처벌했으나 이젠 길이가 한 뼘도 안되는 초미니스커트나 어깨와 팔이 훤히 드러나는 탱크톱을 입는 게 예사다.

문제는 시간이나 장소를 감안하지 않고 따라하는 '너무 과감한 노출'이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노출 40%'를 넘어서면 매력을 느끼기보다는 외설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기억할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성범죄의 상당수가 과다노출에서 비롯된다니 하는 얘기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