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계약 때 가입자가 직접 가입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고 은행 PB(프라이빗 뱅커)가 대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PB를 믿어서,은행까지 가는 게 귀찮아서 전화로 설명만 듣고 PB가 대신 서명하도록 한다. 펀드 실적이 좋으면 양자 간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손실이 발생하면 서명을 대신한 것을 두고 법정투쟁이 벌어진다. 이런 경우 펀드 가입은 유효한가,또 손실부분에 대한 책임을 PB를 고용하고 있는 은행에 물을 수 있을까. 법원은 이런 가입자의 책임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부장판사 이병로)는 초고위험 금융상품에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본 장모씨(68) 등 가족 4명이 "펀드 가입으로 손해를 본 1억8000만원을 돌려달라"며 자산관리를 담당한 국민은행 직원 김모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가 원고들을 대신해 펀드 '가입신청서'와 '투자설명서' 등에 원고들의 명의로 서명 · 날인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도 "이는 원고들이 은행지점을 직접 방문하는 것을 번거로워하자 피고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전화를 걸거나 직접 방문해 투자정보에 대한 설명을 한 후 승낙을 받은 것인 만큼 임의 가입에 따른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은행이 투자자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장씨의 주장에 대해 "피고가 펀드 가입에 앞서 상품을 설명하고 원고의 지시를 받아 반복적으로 펀드에 가입해온 점을 볼 때 단지 투자설명서나 약관을 직접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설명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장씨 가족은 2007년 11월 총 4개 펀드에 4억1000만원을 투자했다가 1억8000만원의 손해를 보자 소송을 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