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자유구역이 겉돌고 있다. 총리실의 진단이다.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한 경제자유구역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어느 한 곳도 제대로 된 경제자유구역이 없다는 것이고 보면 정부가 왜 6개나 지정했는지 모를 일이다.

어디 경제자유구역뿐인가. 혁신도시,기업도시,각종 특구 등 일일이 기억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현란한 용어의 사업들로 넘친다. 앞으로는 새로운 이름을 찾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이 역시 제대로 된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세종시가 이대로 가면 유령도시가 될 것이라며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 경제허브,과학메카 등 지금까지 나온 용어들은 다 써먹는 분위기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지자체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뭐냐는 얘기다. 세종시가 기업이고,과학이고 다 가져가면 우리 쪽엔 올 것이 없다는 논리에서다. 제로섬 게임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없다.

흔히 보수는 경쟁을,진보는 협력을 말한다. 이들이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했다면 지금쯤 뭔가 달라져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역발전정책은 경쟁도,협력도 아닌 오로지 선거에 의해 좌우되고,표 계산 속에서 나오고 있다.

전 정권은 균형정책을 들고 나왔지만 자원배분은 한마디로 나눠먹기식 경쟁,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저마다 조금씩 나눠갖다보니 어느 한 곳도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없는 상황이 됐고,지자체 간 관계도 적대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크리스 그린 전 영국 케임브리지 사이언스 파크 국장은 지역발전정책과 관련해 선택과 집중,그리고 지역적 경계를 넘어 기능적으로 다른 (도시)지역들과의 긴밀한 연결을 강조한다. 박봉규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은 중국에서 우리나라 GDP 규모에 버금가는 광역경제권의 탄생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상하이,항저우 등 16개 공업도시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장강삼각주 일체화 계획'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산업단지의 광역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역별 산업단지의 비교우위를 통합하면 산업단지의 대(大)진화가 일어나고,이는 지역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지역 간 이해관계를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 정권이 광역경제권 개념을 들고 나오기는 했지만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행정구역 통합없이는 힘들다고 말한다. 그것도 지금 논의되고 있는 시군구 기초자치단체 차원이 아니라 광역시와 도(道)의 광역자치단체 간 통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결국 정치적 논리의 극복이 최대 과제다.

프레드 필립스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교수는 지역발전을 위한 '갓파더(Godfather · 대부)론'을 펼친다. 실리콘밸리 등 세계적으로 성공한 지역들에는 예외없이 갓파더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갓파더는 지역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게 아니라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자세로 전체를 바라보는 비전과 통찰력을 가진 선도자다. 그는 이런 갓파더를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슈퍼 네트워커(super-networker)'라고 말한다.

이런 갓파더들이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인가. 유럽국가들은 경제통합에서 정치통합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 좁은 나라에서 지역들이 분열로 가고 있다는 것이 우울하기만 하다.

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