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A (中) 한우물 판다
기술주가 이끄는 증시 호황과 기업 합병(M&A)등으로 골드만삭스 등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이 매년 최고 이익을 경신하던 2000년 8월,미국 4위 투자은행인 DLJ(Donaldson Lufkin & Jenrette)가 크레디트스위스에 115억달러에 매각됐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앞다퉈 투자은행 사업에 뛰어들었던 당시 채권분야 선두권 업체였던 DLJ는 매력적인 매물이었다.

DLJ를 판 곳은 프랑스 글로벌 보험사인 AXA였다. 1991년 미국 2위 생명보험사 에퀴터블 인수로 DLJ 지분을 갖게 된 AXA가 지분 71%를 모두 처분하고 손을 털었다.

"투자은행은 우리 사업이 아닙니다. 우리 비즈니스 모델인 보험업에 집중하기 위해 투자은행을 매각했습니다. 우리는 재보험사도 팔았고,은행도 팔았습니다. " AXA의 손해보험 부문 최고리스크담당임원(CRO)인 조지 기롬의 설명이다.
[세계일류 보험사 리포트] (2) 'IB호황' 때도 한눈 안팔고 보험만…금융위기에도 '승승장구'


◆"아는 것만 한다"

실방 코리아 AXA세숑의 생명보험 글로벌 헤드는 "AIG 등이 실패한 것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을 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보험업만 한다는 전략을 30년간 지켜왔다"고 설명했다.

AXA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자산운용 등 세 가지 사업만 집중하고 있다. DLJ 매각에 이어 2004년엔 독일의 주택담보대출 전문은행인 바우스파르카세도 팔았다.

보험도 잘 할 수 있는 분야만 골라서 하고 있다. 2006년 재보험사인 AXA리를 매각했다. 또 스위스 보험그룹인 윈터투어를 인수한 뒤 윈터투어가 갖고 있던 미국의 손해보험사를 다시 9억2000만유로에 팔았다. 미국 손해보험 시장에선 승산이 없다는 전략적 판단이었다. AXA는 또 2000년대 들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네덜란드에서 자회사를 모두 매각하고 철수했다.

AXA는 프랑스에 소규모 은행을 갖고 있다. 기롬 CRO는 "우리가 은행을 산다면 보험상품을 팔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 은행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상반기 AXA의 매출 484억1400만유로 가운데 생명보험 부분이 62%,손해보험 부분 34%,자산운용 부문이 4%를 차지한다. 은행 부문은 1억9500만유로의 매출을 올려 0.4%에 불과하다.

◆재보험사를 통한 위험 관리

[세계일류 보험사 리포트] (2) 'IB호황' 때도 한눈 안팔고 보험만…금융위기에도 '승승장구'

앙리 드 카스트리 AXA 회장은 "보험업의 기본은 위험 관리"라며 "위험을 떠안는 사업 특성상 리스크가 관리되지 못하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AXA는 본사 직원 600여명 가운데 100여명이 위험관리 업무를 할 정도로 위험관리를 중시한다. 이들은 상품구조 분석부터 자산관리 한도 설정까지 모든 위험을 분석해 경영진에 전달한다.

기롬 CRO는 "상품이 너무 잘 팔리거나 한 투자자산에서 많은 이익이 나면 판매나 투자를 중단시킨다"고 말했다. 덕분에 AXA는 지난해 금융위기 때 자산 1500조원의 1%인 1억5000만유로(2조7000억원) 규모의 손실만 봤다.

AXA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자회사들의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독특한 모델을 갖고 있다. 56개국,250여개에 달하는 방대한 자회사 네트워크를 가진 AXA는 'AXA세숑'이라는 회사를 통해 자회사를 관리한다.

AXA세숑은 쉽게 말해 자회사만 상대하는 재보험사다. 재보험을 받으려면 보험 상품의 리스크와 수익구조 등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한다. AXA세숑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팔리는 모든 상품을 속속들이 꿰뚫어 본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보험을 판매해 떠안는 위험의 약 80%를 세숑에서 재보험을 받아 관리한다. 이렇게 되면 자회사들이 가진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갖게 된다. 또 자회사에서 이뤄낸 신상품 등 혁신을 다른 자회사로 전파시키는 역할도 맡는다.

AXA세숑의 사장 등 고위 임원은 그룹 재무담당임원(CFO)에게 직보하는 체제여서 자회사에서 위험이 발견되면 즉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AXA세숑은 또 자회사가 혼자 하기엔 벅찬 업무,즉 보험시장 연구 · 조사와 정보기술(IT) 시스템 개발 등 시너지를 내기 위한 작업도 맡고 있다.

◆경영진의 영속성

AXA가 수많은 M&A를 통해 자산 1500조원 규모로 성장하면서도 은행 등 영역 확대에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은 장기 업적을 중시하는 경영과 안정된 지배구조에 기반한다.

가이엘 올리비에 그룹 커뮤니케이션 헤드는 "지난 35년간 AXA 회장은 단 두 명뿐"이라며 "경영진이 장기적이고 명확한 비전을 갖고 안정적으로 이끌다 보니 한눈을 팔지 않는다"고 말했다. 1975년 사장이 돼 AXA의 성공을 이끈 클로드 베베아 명예회장은 2000년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앙리 드 카스트리 현 회장이 10년째 경영을 지휘하고 있다.

경영진이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키며 AXA를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은 안정된 지배구조다. 보험지주사인 AXA의 최대 주주는 15%의 지분과 24%의 의결권을 가진 '뮤추얼 AXA'라는 상호회사다. 이 회사는 AXA의 모태였던 보험사 '앙시앙 뮤추얼'이 바뀐 것이다.

베베아는 1982년 프랑스의 생명보험사 드로우(Drouot) 그룹을 첫 인수한 뒤 앙시앙 뮤추얼은 상호회사로 놔두고,드로우는 주식회사로 바꿔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끌어모아 본격적인 M&A에 나섰다. 상호회사를 최대 주주로 만들면 주식회사보다 적은 수의 안정적인 주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드로우는 보험지주사인 AXA가 됐고 앙시앙 뮤추얼은 AXA의 최대 주주인 뮤추얼 AXA가 됐다. 올리비에 커뮤니케이션 헤드는 "베베아는 주요 주주이며 모태였던 상호회사의 뒷받침 속에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을 세워 경영할 수 있었다"며 "그러다 보니 위험을 피하고 보험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파리=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