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베베아가 말하면 프랑스 회사들은 듣는다. "

뉴욕타임스가 2003년 11월18일 클로드 베베아에 대해 쓴 기사의 제목이다. 베베아 AXA 명예회장의 별명은 '프랑스 자본주의의 대부'다. 프랑스식 전통적 가족경영 형태에서 벗어나 영 · 미식 인수 · 합병(M&A)과 수익성 위주의 경영기법을 도입,지방의 작은 보험사를 세계적인 금융사로 키웠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경제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M&A를 잇따라 성공시킨 그는 '악어' '빅 헌터' 등으로도 불린다.

베베아는 1999년 파리국립은행(Banque Nationale de Paris)의 파리바 은행 합병을 제안해 유럽 간판 은행 중 하나인 BNP파리바 설립을 이끌어냈다. 프랑스의 글로벌 미디어 기업인 비방디 유니버설의 회장 교체에도 수차례 관여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01년에는 파리올림픽 유치위원장을 지냈다. 2003년 포천지는 미국 외 전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12명의 사업가 중 한 명으로 베베아를 꼽았다.

베베아가 존경받는 것은 단지 비전과 경영수완 때문만은 아니다. 프랑스 대기업에 투명한 지배구조를 도입하고 스스로 실천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 기업들은 상호 지분 보유를 통해 안전한 경영을 했고 한 기업의 이사가 다른 기업 이사를 겸임하며 이사회에서 사실상 거수기 역할을 하는 구조였다. 베베아가 처음으로 이 사슬을 끊었다. 이사들은 AXA에만 근무토록 했고 다른 기업의 주식을 팔도록 했다. AXA가 상호 지분 보유 목적으로 갖고 있는 다른 기업 주식은 거의 없다.

베베아는 나이 65세가 된 2000년에는 "65세면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나는 전통을 만들겠다"며 감사위원회 회장으로 물러났다. 이후 AXA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프랑스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몽테뉴 재단'을 만들어 프랑스 기업의 바람직한 지배구조 등을 연구하고 있다. BNP파리바의 감사위원회 이사와 프랑스 가전업체인 슈나이더전자의 선임이사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감사위원회 회장직에서도 떠났다. "70세가 넘으면 새로 이사로 선임돼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사퇴의 변이었다. AXA 이사회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는 진심 어린 존경과 아쉬움을 표했다.

베베아가 갖고 있는 AXA 지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가이엘 올리비에 그룹 커뮤니케이션 헤드는 "따져봐야겠지만 1%에 훨씬 못 미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