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내복 입기

'제가 첫 월급을 타던 날 누군가 곁에서 어머님 내복을 사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내의를 사드릴 어머님도,할머님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었습니다…스님의 생신에 무엇을 살까 생각하다가 내의를 사게 된 것은 언젠가 그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 작고한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이 생전에 법정 스님에게 내복을 보내면서 동봉한 편지에 들어 있던 글이다.

취직을 해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내복을 사드리는 것이 관례였다. 추위를 앞둔 늦가을에 입사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따뜻한 마음을 담을 수 있어 선물로 적절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언제부턴가 건물의 난방상태가 좋아지고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면서 내복은 우리 곁을 떠났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스타일을 망가뜨리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왔다.

하지만 내복의 효용은 생각보다 크다. 보온효과가 높아서 착용했을 경우 체감온도가 3~5도나 올라간다고 한다. 내복을 입고 실내 온도를 3도씩 낮추면 에너지비용이 연 1조원 가까이 절약된다는 통계도 있다. 건강에도 좋다. 실내온도가 너무 높아 공기가 건조해지면 코 안의 점막이 마르는 탓에 세균과 먼지를 걸러내지 못하는 반면 내복을 입고 온도를 낮추면 적절한 습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실내에 있다가 밖으로 나갔을 때 큰 온도차를 느껴 몸에 부담이 되는 것을 막는 가장 손쉬운 방법도 내복 입기다.

국내외에서 불고 있는 녹색바람 영향과 신종플루 예방을 위해 내복이 잘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5일까지 롯데백화점 내복매출은 지난해보다 44% 늘었고 소공동 본점에선 2배나 급증했다. 특히 복을 불러오고 나쁜 기운을 쫓는다는 빨간 내복 판매가 전체의 60%에 달했다고 한다. 행정안전부도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마련한 '고마운 사람에게 내복 보내기' 행사를 시작으로 전국 246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범국민 내복입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요즘엔 스타일을 구긴다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 세련된 디자인에 이런 저런 기능까지 갖춘 내복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얇은 천이 몸에 밀착되도록 만들어진 '보디핏 내복'에서부터 우아한 색과 무늬의 패션내복,피부 자극을 줄이는 친환경 내복,마찰에 의해 열을 내는 발열 내복까지 등장했다. 마침 기온도 뚝 떨어졌으니 건강과 환경,경제에 두루 보탬이 되는 내복 입기에 동참해보면 어떨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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