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과 삼성전자 중 어디가 더 인기 있는 직장일까. 이 둘은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간판이다. 최근 그 두 곳에 모두 합격한 행복한 학생이 그 답을 보여줬다. 그는 별 고민없이 한전을 택하면서 대부분의 학생들도 그럴 거라고 했다. 이렇게 공기업에는 매년 우수 인재들이 몰린다. 공기업에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한 발 떨어져 비교적 편안한 안주(安住)형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반면 민간에서는 피곤한 경쟁형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정적 전력공급을 중시하는 한전보다는 신제품 개발로 세계시장을 누벼야 하는 삼성전자에 우수한 인재가 더 몰리는 게 국가적으로는 맞지 않을까. 훌륭한 인재란 경쟁의 단련을 거쳐 더욱 성장하는 법이다. 공기업에도 경쟁의 바람이 더 세게 불어야 한다.

그런데도 현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에 대항하기 위해 민노총과 한노총이 최근 공동 투쟁을 선언했다. 단체협약 개정이나 연봉제,임금피크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으며 정부에 의한 인건비 예산지침과 경영평가를 폐지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기업 직원들에게는 공감을 얻을지 모르나 국민들이 얼마나 공감할 지 의문이다. 오히려 국민들은 개혁과 경쟁을 거부하며 기득권에 집착하는 공기업의 이기주의로 이해하지 않을까.

김대중 정부에서 한참 거세던 정부개혁의 파도를 일거에 잠재운 1999년 6월의 일을 기억하는가. 바로 파업유도사건이다. 당시 조폐공사 사장이 강성노조를 다스리기 위한 명분을 얻기 위해 일부러 파업을 유도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옷로비 사건과 함께 특검으로 연결돼 김대중 정부개혁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한 사건이었다. 필자는 당시 기획예산처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파업유도 사건 이후 국민의 신뢰가 약화돼 가는 과정을 체험했다.

양 노총은 지역별,사업장별 순환파업을 거쳐 이달 말 총파업에 나설 태세다. 많은 공기업들이 이미 파업을 했거나 계획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25일까지로 예정된 노사정 6자 대표자 회의에서 노조전임자,복수노조 문제에 대한 정부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양 노총이 공기업 노조를 앞세우는 전략으로 풀이한다. 물론 공기업에도 파업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진행과정은 공기업 노조가 양대 노총의 전략적 판단 아래 파업을 위해 정해진 수순을 밟고 있는 느낌을 준다. 10년 전에는 '파업유도'로 정부가 국민신뢰를 잃었다면 지금은 공기업 노조가 '파업기획'으로 국민신뢰를 잃지 않을까 걱정이다.

공기업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기업 노조에 제언하고 싶다. 공기업 노동운동이 양대 노총의 전략에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개혁을 통해 대국민 서비스 개선과 예산절감을 보여 줘야 공기업노조가 국민의 신뢰를 받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그러자면 정부의 공기업 개혁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상명하달식 개혁보다는 자율개혁을 독려하고 이에 앞장서는 공기업과 기관장에 대한 보상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개혁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확신을 공기업에 심어줘야 한다.

얼마 전 이라크 공무원 대상 강의에서 개혁을 통해 국민적 신뢰를 얻어야 공무원 보수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의외의 반론이 쏟아졌다. 이라크는 대부분의 정부 수입이 세금이 아니라 석유 관련 공기업에서 나오므로 국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기업의 주인은 정부이므로 그 수입을 공무원 보수에 쓰는 것은 정부 맘에 달렸다고 했다.

설마 우리 공기업 노조 중 "우리 수입으로 우리가 쓰는데 왜 국민 눈치를 보느냐"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공기업의 주인은 국민이다.

박진 < KDI 정책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