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점수표에서 벗어나야 할 대학입시

주말에 책 한 권을 읽었다. 이황,유성룡 등 조선시대의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었다. 모두들 한 시대 이름을 날렸던 쟁쟁한 학자요 문인이었으며,하나 같이 대쪽 같은 성품으로 알려진 인물들이었기에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 또한 엄격,냉정,절제의 덕목만으로 가득 차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접해본 옛 아버지들의 편지는 의의였다. 아내의 건강과 며느리의 산후조리를 염려하기도 하고,자식들의 끼니 걱정으로 애를 태울 뿐 아니라 손수 담가 보낸 고추장 맛이 어떤지 왜 답장이 없냐고 채근하는 등 자정(慈情)이 넘쳤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들의 편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역시 자식들의 공부문제였다.

특히 과거에 임하는 자식들을 채근하고,격려하는 마음은 대학입시 수험생을 둔 우리 시대 부모의 그것과 흡사하였다. 자신감을 잃고 지레 과거를 포기한 아들에게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서 한번 가면 뒤쫓기 어렵다"며 이제라도 뜻을 세워 분발하라는 이황,체력이 약한 아들에게 "비록 능히 밤을 새우고 낮이 다하도록 힘을 쏟지 못한다 해도 날마다 부지런히 애쓴다면 날짜로는 부족해도 햇수로는 넉넉하다"고 격려하는 안정복,밤새워 공부하는 아이들이 몸을 상할까 "3경까지 자지 않으면 피가 심장으로 돌지 않는다"는 옛말을 들어 조금 천천히 하라는 유성룡의 편지도 있었다.

지난주 대입 수능시험이 있었다. 한 주일 내내 일기가 고르지 않은 데다 신종 플루마저 수그러들지 않아 가뜩이나 긴장한 수험생들의 맘을 더욱 졸이게 했다. 지난 한 해 잠 한번 실컷 못 자고 하고 싶은 것 제대로 못 하면서 쌓아온 공부인데 하필 이 때 아프거나 실수를 해서 시험을 망친다면 큰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날을 위해 애써온 날이 어찌 지난 한 해뿐이겠는가. 겨우 말을 익힌 어린 나이에 '경쟁'이라는 긴 여정에 돌입하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무려 십사오년에 이르는 나날이다. 그 오랜 결실이 겨우 획일적인 시험의 서열화된 점수표라니 허망할 법도 하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그런 그들을 지켜보면서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독려해온 부모들의 심중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런 안타까운 부모 심정이 속절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다. 중학교 입시가 있었던 시절 겨우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졸음을 깨우기 위해 커피가루를 입에 털어 넣거나 눈꺼풀에 외용 소염제를 바르는 걸 바라보며 애태우던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던 우리가 부모가 되어서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중학교 입시가 폐지된 데 이어 고교입시도 폐지되었지만 어느 틈에 특목고 등의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대입도 본고사가 폐지되고 학력고사와 수능이 도입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 못했다.

나라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대학이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 수능이나 내신점수 위주로 일률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입제도는 획일적이고 단편적인 교육방식을 부를 뿐이고 의미 없는 경쟁을 촉발할 뿐이다. 다행히 이를 인식한 대학들은 저마다 학생선발 방식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이 자기 대학의 교육이념과 교육특성에 잘 맞는지,어떤 학생이 장차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할 인물로 클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지 모색해온 결과다.

이와 관련해 입학사정관제의 도입과 정착은 특히 중요하다.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면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힘을 합치는 미래형 인재들을 선발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고생하는 수험생과 부모들의 안타까움을 줄여주기 위해서라도 정부도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허구생 <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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