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14좌 완등 도전 오은선 등반대장
"돌아설땐 미련없이 하늘 뜻 따라야"
[월요인터뷰] 오은선 등반대장 "최고의 등반은 살아 돌아오는 것"

고산 등정은 극한의 상황을 헤쳐나갈 체력과 정신력을 동시에 시험하는 '서바이벌 스포츠'다. 그래서인지 산악인과는 선문답을 나눌 수밖에 없을 것이란 선입견이 들었다. 오은선 대장(43 · 블랙야크)은 이 같은 우려를 한꺼번에 깼다. 서글서글하면서도 웃음 띤 얼굴로 묻는 말에 시원스럽게 답하는 그에게서 이웃집 누나 같은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는 "1993년 히말라야 도전에 나선 이후 산과 함께 살아왔다"며 "자부심과 성취감,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산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으로 처음 7대륙 최고봉을 모두 등정한 그는 8000m 이상되는 히말라야 14좌 중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의 안나푸르나(8091m)만 남겨둔 상태다. 내년 봄 안나푸르나에 다시금 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8000m 고봉을 오르는 힘이 작은 체구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지난 주말 서울 가산동 블랙야크 본사에서 산에 얽힌 인생얘기를 나눴다.

▼산에 오르게 된 동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와 도봉산 산행에 나섰어요. 버스 너머로 북한산 인수봉이 보였는데 어른이 되면 꼭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그때부터 등정을 마음속으로 그렸나봐요. 그냥 산에 가고 싶었고 또 등산을 하면 마냥 좋았어요. 대학교(수원대) 1학년 2학기 때 산악부에 들어갔어요. 처음 인수봉 등정에 성공한 뒤 너무 기뻐 팔짝팔짝 뛰면서 내려왔어요. 좋으니까 오르는 거죠."

▼키가 154㎝,48㎏으로 왜소한데요.

"작아도 문제고 커도 문제죠.체력에는 문제가 없어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 수영을 자주 해요.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은 등산도 하고 걷기도 짬짬이 합니다. 오전에는 운동하고 개인적인 일 처리하고,오후에는 공적인 업무를 보기도 하죠.1초를 단축하는 기록 경기가 아닌 데다 코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체계적인 운동 프로그램은 따로 없어요. "

▼산을 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하나. 8000m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어떤가.

"아무 생각 없어요(웃음).가면 즐겁고 행복하고 그저 좋을 뿐이죠.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하는 산행의 기쁨이 얼마나 큽니까. 고산 등정의 경우 오르고자 하는 목표 하나만 생각하죠.자연의 뜻에 거스르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죠.정상이 가까워지면 무사히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해요. 사느냐,죽느냐 기로에 있다 보니 다른 생각이 스며들 틈이 없어요. 산소 함유량이 해수면의 20~30%밖에 되지 않아요. 그런 공기 속에서 발걸음을 내디딘다는 것 자체가 신비죠.8000m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직접 가서 보셔야 하는데….정말 자연이 위대하고 경이로워요. 정상에선 태극기 들고 사진 찍는 게 전부죠.혼자 등반한 로체에선 '셀카'로 찍어 얼굴이 크게 나왔죠.다행히 하루 먼저 오른 팀이 남긴 표시를 사진에 담아 등정을 인정받았어요. "

▼등정 때 뭘 챙겨 가나.

"4년 전에 엄마가 주신 염주를 왼팔에 꼭 찹니다. 지난달 초 안나푸르나 등정 때 캠프3에 저의 분신인 피켈(도끼모양의 쇠붙이가 붙어있는 지팡이)을 놔두고 왔어요. 500g밖에 안 나가지만 당시는 그것도 무거워서 안 들고 왔어요. 10월 말에 한 번 더 오를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두고 온 게 지금도 머리에 맴돌아요. 고봉 등정을 마치면 며칠 동안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어져요. 솔직히 방 정리를 잘 안 하는 편이에요. 떠날 때 깔끔하게 주변을 정리한 뒤 못 돌아온 선배들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등산 장비는 배낭 의류 슬리핑백 매트리스 피켈 식량 헤드랜턴 등 15㎏가량 나갑니다. 텐트 버너 연료 등은 셀파와 나눠서 들고 갑니다. 마지막 정상에 오를 때는 물(1ℓ)과 간식,여분의 양말과 장갑,카메라,깃발,메모지 등을 챙깁니다. 카메라는 결로현상을 막기 위해 비닐백에 넣고 배터리는 가슴에 품고 잡니다. 물론 해가 날 때 찍을 수 있어요. 생리현상도 해가 뜰 때 해결해요(웃음)."

▼즐겨 먹는 음식은 뭐고,체력 부담은 없나.

"엄마가 곰국을 자주 해주세요. 고봉을 오른 뒤에는 된장찌개 콩나물국밥 복지리 등 담백하고 가벼운 음식이 생각나요. 체력 회복을 위해 낙지 문어 같은 스태미너 음식도 즐기죠.처음 고봉 등정 때는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는데 지금은 속도 조절을 하며 자연스럽게 나아가요. 지난 9월 체육과학연구원에서 몸 상태를 점검했는데 심폐 기능이 남자 철인3종 선수와 비슷하게 나왔어요. 저는 동상에 한번도 걸리지 않았어요. 혈액 순환이 좋고 체력이 뛰어나서인지,아니면 운이 좋아서인지 모르겠어요. "

▼등산 인구가 늘면서 에티켓도 문제가 되는데.

"산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죠.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하잖아요. 산을 좋아하면 어떻게 산에 해가 되는 일을 하겠어요. 나 혼자 편하자고 산에 쓰레기를 버릴 순 없을 거예요. 몰라서 그랬던 것도 자연스럽게 고쳐집니다. "

▼지난달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 정상을 300m가량 앞두고 기상 악화로 등정을 포기했는데.

"돌아설 때는 미련을 갖지 않고 과감하게 돌아섭니다. 하늘의 뜻에 따라야죠.저는 최고의 등반은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제가 있어야 모든 게 존재하고 의미가 있잖아요. 정상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고 저는 언제든지 오를 수 있다는 점이죠.정상에 갔다가 돌아와야만 그 산이 온전한 제 것이 되죠."

▼경쟁했던 고(故) 고미영씨를 떠올리면.

"(갑자기 목이 잦아지며) 그 친구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파요. 같은 방향을 바라봤던 동료이자 선의의 경쟁자를 잃었으니 안타깝죠.그 친구가 있어 더 분발한 것도 사실이에요. 때론 허탈하고 허무하기도 해요. 오르면서 힘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동료를 잃을 때가 가장 슬퍼요. 지금으로서는 열심히 등반을 마무리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개인적인 꿈에서 시작한 게 국민 모두의 꿈으로 커졌습니다. "

▼14좌 완등 시점과 이후 계획은.

"내년 2월 말이나 3월 초 안나푸르나로 다시 떠날 예정입니다. 보통 캠프도 한두 개 만들고 적응 훈련을 하다 보면 한 달에서 한 달반가량 걸립니다. 일반인들은 6000m 높이에서 한 달을 지내야 적응하는데 저는 2주 안에 움직일 수 있는 몸상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4월 말이나 5월 초까지는 좋은 소식을 알려드릴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와서 완등 후에는 푹 쉴 생각이에요. 고산 경험을 살려 내년 초 고려대 대학원(고소생리학과)에서 공부할 계획도 세웠어요. 막연하게 지금껏 도와주신 분들의 성원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청소년 캠프,강의,저술 등도 한 방법입니다.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에게 비전과 희망,도전정신을 심어주고 싶어요. 기회만 닿는다면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들과 함께 '큰 뜻'을 펼쳐보고 싶어요. "

▼결혼은 언제 할 계획인가.

"하고 싶다고 하나요. 짝이 나타나면 쉰 살이 되더라도 해야죠.저를 이해해주고 마음 맞는 사람이면 좋아요. 나이가 있으니까 애를 낳는 건 욕심일 테고 그래도 등 긁어주고 말동무 할 사람은 있어야죠.산악인이든,연상연하든 상관 없어요. 다시 20대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쿨한 연애'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 프로필 >

▼1966년 3월 전북 남원 출생

▼1985년 9월 수원대 산악부 입회

▼2002~2006년 유럽 엘브르즈(5642m) 등 7대륙 최고봉 한국 여성 최초 등정

▼2004년 12월 한국대학산악연맹 올해의 산악인상 수상

▼2007년 10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여성 1호상' 수상

▼1997~2009년 에베레스트 K2 등 히말라야 8000m 이상 13개봉 등정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