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자격사 선진화, 도로아미타불 되나

"도무지 얘기가 통하지 않으니…." 최근 전문자격사 시장의 진입 문턱을 낮추는 제도개선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열기로 했던 공청회가 약사회의 실력저지로 무산된 데 대한 생각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경쟁력을 키울 방안을 함께 찾아보자는 것이지 밥그릇을 뺏으려는 게 아닌데…"라고 운을 뗀 이 관계자는 "답답할 따름"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사(士)'자 직종으로 통하는 전문자격사 문제가 난기류를 만났다. 진입문턱을 낮추고 외부 자본이 유입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약사회를 비롯한 대다수 자격사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다. 1998년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가 한 차례 시도했다가 자격사단체들의 반발에 밀려 무산됐던 일이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자격사 제도개혁은 그만큼 해묵은 과제다.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진입장벽,외부자본 유입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등 폐쇄적 산업구조는 경제위기를 겪을 때마다 핵심 개혁과제로 꼽혀왔다. 국가에서 주는 면허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다보니 규모나 경쟁력은 동네 구멍가게나 다름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법률분야만 보더라도 국내의 변호사 1명당 인구는 5891명으로 미국(268명),영국(394명)에 비해 너무 많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국민들에게 양질의 서비스가 제공되기 어려운 구조다. 생산성도 떨어진다. 국내 변호사업계의 전체 매출이 영국의 로펌 1곳만도 못할 정도다. 세무사 관세사 회계사 약사 등 대다수 업종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격사단체들은 11년 전의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도 시장규모가 영세한데 더 많은 인력을 뽑으면 뭘 먹고 살라는 것이냐'(감정평가사),'대기업이 진출하면 영세 약국들은 다 망한다'(약사) 등 고충도 토로한다. 밥그릇 지키기는 아니라는 항변도 덧붙인다.

정부는 이번 주 중 의료분야 자격사 문제를 다룰 공청회를 다시 한번 열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왜 세계시장을 석권했는가. 보호막없이 세계의 강자들과 혈전을 치르면서 내공을 다졌기 때문 아닌가"(현오석 KDI 원장)란 지적을 곱씹어봤으면 한다.



이태명 경제부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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