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야행'의 미호 역
손예진 "그냥 악역은 매력 없잖아요"
배우 손예진은 유독 밝았다.

가볍고 편안한 느낌의 니트 스웨터와 흰색 스커트에 귀여운 타이츠까지 받쳐 신고, 예의 그 귀여운 눈웃음과 미소를 지었다.

말도 쉼 없이 빠르게 거침없이 이어갔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12일 만난 손예진에게 '백야행' 속 완벽하게 꾸며진 미호의 모습은 없었다.

"우습게도 미호가 너무 두려웠어요.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휩쓸리게 될까봐 무서운 거예요. 영화 기획 단계부터 오랜 시간 미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받아들이기는 두려워서 '찍는 동안만 미호가 되자' 했어요.너무 무책임한 게 아닐까 하기도 했지만 내가 살고 봐야 하잖아요."

영화로만 벌써 10번째 작품. 청순한 첫사랑 역할로 시작해 '외출', '작업의 정석', '무방비도시', '아내가 결혼했다' 등을 거치며 작품마다 파격적이고 새로운 캐릭터를 그만의 매력으로 소화해 낸 그에게도 '살인자의 딸'이라는 아픈 과거를 가진 미호는 쉽지 않았다.

"이번엔 정말 안 떨릴 줄 알았어요. 하다 보면 다 인이 박인다고 하잖아요. 부담감이 심해서 그런지 시사회에서 처음 영화 볼 때 너무 떨렸어요."

그러면서도 "작년에 '아내가 결혼했다'로 큰 상을 받은 뒤라 그런지, 열 번째 작품이라는 의미 때문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다.

"'작업의 정석' 때는 '좀 놀라실 수도 있겠다' 했고 '아내가 결혼했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관객 반응을 보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모르겠더라고요. 그만큼 미호는 어려웠어요."

영화의 원작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영화 제작자가 '이걸 영화로 만들고 싶다'며 손예진에게 책을 건넸고 '시나리오가 나오면 주겠다'고 했다.

"소설 속 미호 역은 뼛속까지 악역이에요. 소름끼치도록 무서웠죠. 만약 영화에서도 그런 캐릭터였다면 안 했을 거예요. 그냥 악역은 매력 없잖아요. 미호는 정의할 수는 없지만 '왜 가슴이 아프지'라는 느낌으로 만들어보자고 한 거예요."
손예진 "그냥 악역은 매력 없잖아요"
영화는 약혼자와 정사를 나누는 미호와 살인을 하는 요한(고수)을 번갈아 보여주며 강렬한 대비로 시작한다.

후반부에서 미호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에는 요한이 다른 여자와 격렬한 정사를 나눈다.

포털 사이트에서 '백야행'을 검색하면 '노출'이 함께 뜨는 이유지만, 손예진은 "미호와 요한은 따로 떨어져 있고 다른 행동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꼽는 것 역시 옷을 벗은 채 약혼자의 딸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그는 "절대 야해서는 안 되고 아픔으로 다가와야 하는 장면인데 과연 관객은 미호의 마음을 이해해 줄지, 관객을 끌기 위해 억지로 넣었다고 생각할지 걱정됐다"고 했다.

노출만큼이나 그를 힘들게 한 것은 극도로 절제되고 완벽한 미호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는 장면에서도 시선의 각도를 달리해 수차례 다시 찍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다 알고 있는 듯, 슬픈 듯 기쁜 듯, 알 수 없는 표정이 미호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였다.

손예진은 고개를 여러 각도로 숙였다 들었다 하고 시선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손발을 꽁꽁 묶어 놓고 연기하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실컷 설명을 하더니 "어려웠네요. 그 어려운 걸 제가 왜 했을까요?"라며 새삼 되묻기도 한다.

"다음 작품은 편한 거 하고 싶어요. 재밌고 덜 힘든 걸로요. 미호 같은 캐릭터는 다시 만나기도 쉽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다른 매력을 가진 역할이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다시 하겠죠?"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eoyy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