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출산율이 급속하게 감소하면서 일생을 통해 출산 경험이 한두 번에 그치는 여성들이 많다. 즉 자녀가 한 명 혹은 두 명밖에 되지 않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고, 그러다 보니 귀한 자식을 위해 태교에서부터 시작해 양육, 교육에 부쩍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런 풍경이 되었다. 건강하고 영특한 아기를 출산하려는 욕구가 커지다 보니 태교의 중요성도 나날이 커졌고 미술태교, 음악태교, 영어태교, 요가태교, 발레태교 등 갖가지 형태로 태교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태교에 들이는 정성만큼 과연 출산에도 정성을 들이고 있는 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7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한 권의 책이 있었다. 프랑스의 산과의사였던 프레드릭 르봐이예 박사가 발간한 였다. 직역하면 ‘폭력없는 탄생을 위하여’인데, 우리말로는 으로 번역된 책이다. 이 책은 산모와 의료진의 입장이 아니라 아기의 입장에서 출산과정을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의료진의 편의대로 이루어지는 분만 방식 속에서 아기가 느끼는 폭력에 가까운 고통과 스트레스를 1인칭 시점으로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했다. 이 책은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는데, 전세계 어머니들은 책 내용에 열광했고, 의료기간 곳곳에서는 떠들썩한 소동이 일어났다.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분만과정에서 잊혀져 온 아기의 입장이 너무도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과거 분만이라는 게 사실 의사와 병원 중심 아니었던가. 출산의 고통을 겪는 산모의 본능이 움직이는 대로 분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병원 편의대로 의사가 전적으로 결정권을 가지고 의학처치에 편한 방식으로 분만이 이루어졌다. 산모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 분만 대기실에 꼼짝없이 누워 외롭게 분만을 해야 했다. 아기도 마찬가지다. 탯줄을 서둘러 끊고, 아기를 거꾸로 드는가 하면 엉덩이를 찰싹 때려서 울음을 울게 했다. 우리 모두는 아기의 첫 울음을 ‘무사하게 이루어진 탄생’의 신호로, 아기의 기쁨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였다. 암흑에 가까운 고요한 태내에 머물던 태아가 세상에 나온 순간을 상상해보라. 분만실의 강렬한 조명과 금속 기구들이 부딪치는 소리속에서 으스스한 수술용 장갑과 알루미늄의 차가운 감촉, 풀먹여 빳빳한 수건으로 거칠고 조심성 없이 마구 다루어질 때 아기가 과연 무엇을 느끼겠는가를. 그것은 폭력이다. 엄청난 고통이다. 그러니까 아기는 비명을 지른다. 우리는 ‘녀석, 우렁차게 잘 우네’ 하면서 흐뭇하게 지켜보겠지만. 르봐이예 박사는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갓 태어나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울고 있는 아기 사진 밑에) 형용할 수 없는 분노의 얼굴, 번개 맞은 사람처럼 움켜쥔 손은 머리에 달려 있는 듯 붙어 있고, 벼락맞아 죽기 일보 직전의 부상병처럼, 만신창이가 된 아기, 이것이… 탄생이라고? 이건 살인이다” 아기에 대한 배려 없이 이루어지는 분만 과정을 살인에 가까운 폭력으로까지 묘사한 이유는 그가 수없이 많은 아기를 직접 받으면서 탄생의 순간이 거의 죽음과 같은 공포로 얼룩지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폭력적인 탄생 과정이 결국 우리들의 무의식속에 잠재된 죽음의 공포, 증오심, 불행감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탄생의 순간을 공포에서 평화로 바꿀 수 있는 분만방식에 대해 고민하였고, 소위 ‘르봐이예 분만’으로 알려진 방식을 통해 많은 아기를 받으면서 그 효과를 확인하였다. 르봐이예 박사가 그의 저서를 통해 ‘생명의 탄생에 대한 사고’를 전환시켰다면 프랑스의 미셀 오당 박사는 출산 과정에서 아기는 물론 산모를 배려한 분만 방식을 도입하였다. 출산 중에 산모들이 느끼는 본능에 주목한 그는 환한 조명과 수술대, 수많은 의료진과 여러 의학적 개입이 자연분만을 더 방해하거나 산모들에게 불쾌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그는 산모를 가급적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주는 분만 방식을 시도하면서 40여년 동안 자연분만율 96%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하였다. 이렇게 르봐이예 박사와 미셀 오당 박사의 분만 철학이 합쳐져 국내에서도 뜻을 같이 하는 의사들이 모여 주창하게 된 것이 바로 ‘인권분만’이다. 인권분만은 출산 과정에서 아기와 산모를 전적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출산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출산이라는 자연본능의 경험에서 산모를 가급적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주고, 아기에게는 고통스러운 탄생의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 될 수 있도록 출산환경을 배려하자는 철학인 것이다. 소중한 자녀를 임신한 엄마라면, 자녀의 행복한 인생을 생각하는 아빠라면 태교와 조기교육, 사교육 못지않게 ‘탄생 순간’의 중요성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권분만’은 엄마에게는 출산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이 되는 순간을, 아기에게는 생애 최초의 경험이 평화와 기쁨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해 줄 것이다. (도움말=인권분만연구회 회장 산부인과 전문의 김상현) 장익경기자 ikjang@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