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호 부장,지금 쿠데타하는 거요?"

1992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LG전선(현 LS전선) 임원회의장이 술렁였다. 얼굴이 벌개진 한 임원이 탁자를 손으로 내리치며 브리핑을 끝낸 손종호 부장(현 LS전선 사장)을 다그쳤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업조정팀을 맡고 있던 손 부장이 예고 없이 영업과 생산부서를 한데 묶는 사업부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보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사업부체제 도입은 임원직 삭감을 예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개 부장이 기라성 같은 중역들의 거취에 영향력을 행사한 꼴이 돼버린 것."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판을 새로 짜는 것 아니냐"는 임원들의 질타가 쏟아졌지만 손 부장은 "여기 있는 분들이 결정해주지 않으면 회사 장래가 어렵다"며 버텼다. 분위기가 험악했지만 박원근 당시 사장은 손 부장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 조직이 사업부체제로 전환됐다.

LS전선 최고경영자(CEO)인 손종호 사장(57)의 직장 여정은 파란만장했다. 직속 상관에게도 보고하지 않고,사장에게도 일언반구 언급 없이 '조직재편'을 준비할 정도로 대담하고 통이 컸다. 그만큼 크고 작은 사고(?)도 많이 쳤다. 스스로도 "CEO가 됐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할 정도다.


#인생을 바꾼 '학생회장'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손 사장의 인생엔 어떤 변곡점들이 있었을까. 슬쩍 운을 띄웠더니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1968년 부산고 3학년 시절.학생회장을 뽑는 학기 초였다. 당시만 해도 전교 10% 안에 들어야 출마자격이 있었던지라 공부 꽤나 하는 친구들이 후보 물망에 올랐다. "종호야,니가 해라." 몇몇 친구들이 손 사장을 추대했다. 몇 번 고사했지만 친구들은 "니가 회장을 하는 게 가장 나을 것"이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그 길로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어머니는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회 일을 보느라 성적이 떨어지면서 대입 가도에 문제가 생겼다. 담임 교사는 "한해 160명씩 서울대를 보내는 학교에서 학생회장이 떨어지면 망신"이라며 나무랐다. 당시 그의 꿈은 외교관.외무고시를 보려면 법대나 외교학과 같은 곳에 진학하는 게 유리했다. 하지만 손 사장이 입학한 곳은 언어학과였다. '점수에 맞춘 선택'이었다는 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손 사장의 꿈은 자신이 의도치 않았던,예기치 않은 일을 계기로 조금씩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손 사장의 경제사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열다섯 살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가 작은 가게를 열었지만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6남매 중 첫째였던 손 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머니가 가게문을 닫을 때까지 거드는 일뿐이었다. 공부라곤 학교에서 하는 것이 전부였다. 원망할 시간도 기회도 없었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낙천주의자로 살았다.

그가 외교관의 꿈을 접고 1976년 LG전선에 입사한 것은 지도교수의 조언 때문이었다. 손 사장의 형편을 잘 아는 교수가 "LG전선은 좋은 회사"라며 적극 추천했다. 공채시험에 도전을 해 합격증을 받아들 때까지 손 사장은 LG전선이 '빨랫줄 같은 전선'을 만드는 회사인 줄 몰랐다고 했다.


# 재미있게 일해야 한다

손 사장의 직장생활을 관통하는 좌우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나머지 하나는 업무에 사심(私心)을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그다지 특출할 것도 없는 원칙들이지만 그는 유난을 떨었다고 한다. "사실 저는 굉장히 부드러운 성격인데 이상하게 회사만 오면 '세게' 변한다. 눈빛이 달라진다는 얘기도 듣는다"고 했다. 공장 하나를 담당하던 임원을 일개 사업부원으로 내려앉히는 일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0년 사장 직속 부서인 사업조정팀장을 맡은 손 사장의 눈엔 회사 조직이 엉망진창이었다. 안양사업본부장,구미사업본부장,특판사업부장….이런 식으로 조직이 병렬형으로 늘어서 있다 보니 의사결정 속도가 느렸다. 사장이 해야 하는 일은 미래 전략과 기술 개발,해외사업 추진 등이어야 하는데 임원들이 사장실에 들고 오는 서류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다. '반제품을 수출할까요,완제품을 수출할까요'를 묻는 보고서는 차라리 나았다. 신입사원 연수지를 결정해 달라는 것들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장을 만나는 일 자체도 어려웠다. 사장 방문 앞에 임원들이 결재를 받기 위해 줄을 서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손 사장은 '이래서는 회사가 안되겠다'싶어 6개월간 일본 6대 전선회사 자료를 수집해 사업부체제로의 개편안을 준비했다. 사전에 누구에도 알리지 않은 비밀작업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야 힘들고 어려운 문제도 돌파해나갈 수 있어서다. 2004년 전무 시절의 일.LS그룹이 LG에서 분가한 이후 구자열 LS전선 회장이 JS전선(옛 진로산업)을 인수해 손 사장에게 경영을 맡겼다. 회사에 가보니 숨이 턱 막혔다. 8년간 주인 없이 운영됐던 터라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환경문제,노조문제,영업권 다툼 문제….게다가 쓸 만한 사람들마저 회사를 많이 떠나간 뒤였다.

손 사장은 "아무 문제가 없는 회사에 나 같은 사람을 보냈겠느냐"며 팔을 걷어붙였다. 끊임없이 노조와 거래선을 찾아다녔다. 손 사장은 인수 3년 만에 유가증권시장에 회사를 재상장시켰다. 2004년 1600억원이던 JS전선 매출은 지난해 4800억원으로 늘어났다.


#한때 팀장으로 강등됐지만…

손 사장은 그동안 영업관리,경영관리,공장장,신사업팀장 등 연구소장 일을 빼놓고는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업무를 섭렵했다. 하지만 잦은 업무교체에도 불평을 입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어디서든 최선을 다한다는 좌우명 때문이었다. 임원 시절 자동차 브레이크 호스 만드는 사업을 해보라며 팀장 자리로 발령이 났을 때에도 그랬다. 속으로는 '팀장이 할 일이지 임원이 할 일이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3년간 묵묵히 일을 했다.

경기도 안양공장 구석방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하고 공장 짓고 기술 도입하고,납품하는 일까지 모두 했다. 열정을 다 바쳤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주거래처인 삼성자동차가 사업을 접으면서 그가 이끌던 사업도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손 사장은 "손대는 일마다 성공을 거뒀더라면 이 자리에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 것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얘기였다.

손 사장은 "요즘 회사 키우는 재미로 산다"고 했다. 지난해 인수한 북미 최대 전선회사인 수피어리어 에식스(SPSX)와의 통합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엔 기업 인수 · 합병(M&A)을 염두에 두고 러시아의 소규모 전선회사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회사의 비전도 새로 설정했다. LS전선을 세계 1위 전선회사로 만드는 것."반도체,조선에서 우리 기업들이 1등을 하는데 전선업종이라고 안되겠습니까?"

인터뷰 말미엔 세계 전선시장 3위인 LS전선 자랑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해저케이블을 만들기 시작했고,풍력발전용 케이블도 만들고,보이지 않는 전선도 만들 요량이라고 했다. 손 사장은 CEO로서 최고의 덕목을 묻는 질문에도 역시 '재미'라고 대답하곤 웃었다. 정말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김현예/김용준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