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의 한국화이바 제2공장.한쪽에 세워져 있는 높이 2m가량의 시커먼 원뿔형 구조체가 눈길을 끈다. 지난 8월 전남 고흥에서 발사한 '나로호'에 탑재했던 '페어링(fairing · 발사체 상단의 위성을 보호하는 덮개)' 샘플이다. 페어링은 발사체 상단에 위치해 다른 어느 부품보다 고온에 잘 견디고 가벼워야 한다.

페어링을 만드는 데 사용한 소재는 탄소섬유.알루미늄 소재보다 더 견고하면서도 가벼운 게 장점이다. 아직 단열재를 붙이지 않은 구조체 겉면에서는 씨줄과 날줄로 직조한 천의 촉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슈퍼 · 스마트 · 나노 등 기능성을 대폭 강화한 신(新)섬유가 뜨고 있다. 우주선은 물론 비행기 미사일 자동차의 소재로 철강 알루미늄 등의 영역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미국 보잉사는 보잉 777기의 동체로 철강 무게의 4분의 1에 불과한 탄소섬유 복합재료를 사용,무게를 60t가량 줄였다. 정보통신 소재와 인공 장기에도 신섬유는 핵심 소재다.

의류 소재로 출발한 섬유가 불과 열에 잘 견디는 내연성과 경량성,온도와 습도에 따라 다른 성격을 나타내는 가변성 등을 앞세워 전방위 산업 소재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신섬유 시장 규모는 지난해 2110억달러에서 2015년에는 5814억달러로 3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전망하고 있다.

각국의 신섬유 소비도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의 섬유 소비 중 70%는 신섬유를 중심으로 한 산업용 섬유가 차지한다. 의류용 섬유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일본과 유럽의 산업용 섬유 비중도 각각 69%와 59%에 달하고 있다. 섬유가 옷을 만드는 소재보다는 자동차 항공기 로켓 의료장비 등의 산업용 소재로 훨씬 더 많이 쓰이고 있어서다.

한국은 신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25%로 선발국들에 한참 뒤처져 있다. 한국 기업들이 1970년대 세계에 군림했던 '섬유강국'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기능성 신섬유 기술개발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코오롱 효성 휴비스 등 국내 대기업들은 자체 기술로 철강보다 인장 강도가 최고 10배 이상 높은 아라미드 섬유,초극세사(超極細絲)보다 더 얇은 나노 섬유 등 첨단 신소재를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하명근 섬산련 부회장은 "신섬유는 앞으로 4~5년 안에 소재시장에서 철강산업을 뛰어넘을 것"이라며 "신섬유 소재 연구 · 개발에 민 · 관의 공조가 더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선/이정호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