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의장에 사외이사 앉히라니‥" 은행, 불만증폭
은행이나 은행지주회사의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이사회 의장에는 사외이사를 앉히도록 한 '사외이사 제도 개선 방안'이 발표된 이후 은행권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유효성이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금융회사 자율에 맡겨도 될 일을 서둘러 의무화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세다.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개선방안은 외형적으로는 금융연구원이 마련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론 금융위원회가 주도한 정부안의 성격이 짙고,금융위 역시 '연내시행'을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논란이 커지자 금융위는 이번 주 중 은행지주회사와 은행의 실무급 담당자들을 불러 회의를 갖기로 했다.

◆일률적 규제 논란

은행권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이사회 의장에 사외이사를 앉히라는 내용이다. 이미 그런 체제를 도입한 KB금융지주를 제외하고는 모든 은행지주회사와 은행들이 회장 또는 행장을 이사회 의장에서 해임해야 할 판이다.

A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유럽은 최고경영자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게 일반적이고 미국은 겸직이 더 보편적이었지만 최근엔 유럽에서는 겸직이,미국에서는 분리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딱히 어떤 방안이 이상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분리 방안이 모범답안이라고 강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 사정에 따라 겸직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게 좋을 때가 있고 분리를 통해 상호견제에 힘을 싣는 것이 유리한 때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일률적 규제는 지나친 경영간섭이고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B은행 관계자는 "이사회 의장 선임에 정부 측 입김을 불어넣으려고 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CEO 못지않은 권한을 가지는 자리를 대거 만들어 관료나 권력과 가까운 사람을 내려보내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맹비난했다.

◆이사회 기능 퇴보 우려도

C금융지주 관계자는 현실성 측면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에 부의되는 모든 내용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전문성이 강한 은행 업무의 특성상 외부 인사가 소화하긴 거의 불가능한 게 사실"이라며 "이사회 기능이 오히려 퇴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사회 의장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은행에 상근하면서 모든 보고를 받아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사실상 사내이사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직원들도 두 명의 의사결정권자에게 이중으로 보고해야 하고 혹여 두 사람 간에 생각이 다를 경우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D금융지주 관계자는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한 것이나 사외이사 임기를 다년제로 한 것 등 대부분 내용이 KB금융지주의 모델을 차용해온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의장이 하자는데 사외이사들이 반대하고,지주에서는 결정했는데 계열사 사외이사들이 반대해서 다시 올라오고,사외이사들 간에 회장파니 행장파니 하며 분파가 생기고 하는 등의 병리현상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도개선방안이 '모범규준'에 불과한 만큼 강제성이 없다는 정부 측 주장에 대해서도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반응이 다수를 차지했다. E은행 관계자는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지 않을 때는 그 이유를 공시하라고 하고,경영실태평가 기준인 카멜(CAMEL)에서 감점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의 강제화"라고 주장했다.

김인식/강동균/유승호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