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세계 금융계를 주름잡았던 앨런 그린스펀이 은퇴 후 어느 헤지펀드 컨퍼런스에서 강연을 마치자 실무자가 물었다. "강연료를 달러화로 드릴까요,아니면 유로화로 드릴까요?" 그린스펀은 짤막하게 답했다. "골드".경제전문 케이블 채널 CNBC에 소개된 일화다.

그린스펀이 금을 선택한 것이 본심인지 조크였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이 매력적인 금속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꿈은 오랜 기간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유럽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계기가 됐던 마르코 폴로의 동방 모험이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도 금을 찾아내겠다는 욕망에서 출발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1492년 미국으로 가는 첫 항해 일지에 콜럼버스는 '금을 갖는다는 것은 영혼이 천국에 갈 수 있는 보물을 지닌 것'이라고 썼다. 지금도 미국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독일 프랑스도 50%를 넘는다.

금의 원소기호'Au'는 '빛나는 새벽'이라는 뜻의 라틴어'aurora'에서 나왔다. 세계 5대양 6대주 어디에나 있으나 어느 곳에서도 쉽게 구하지 못한다. 그래서 귀하다.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금 장식품을 만든 이래 지금까지 인간이 캐낸 금을 모두 합쳐봐야 13만~15만t에 지나지 않는다. 웬만한 컨테이너선 한 척에 다 실을 수 있는 양이다. 남아 있는 금 매장량은 5만~10만t정도.앞으로 20년쯤 더 캐내면 바닥날 것이라고 한다.

금은 1온스(28g,약 8돈)로 80㎞짜리 금실을 뽑을 수 있을 만큼 질긴데다 얇게 펴면 9㎡짜리 판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다. 어지간해서는 변색되거나 녹슬지 않아 4500년 전 이집트인이 만든 금니를 지금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니 놀랍다. 최대 수요국은 단연 인도다. 연 수요량 555t(2007년)의 대부분을 지참금 형식의 신부 예물로 쓴다.

금융시장 불안과 달러 약세의 영향으로 금값이 치솟고 있다. 6일엔 온스당 1089.3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20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금투자 펀드나 파생상품,금값 연동 예금도 판매되고 있으나 이런 급등추세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1980년 1월에도 온스당 850달러를 넘어서자 지속적 상승 전망이 쏟아졌지만 곧 급락세로 돌아섰고 3년 뒤엔 반토막 났다. 금투자를 할 여력이 없다면 장롱속 금반지나 한번 꺼내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