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때 과감한 투자…글로벌 경영
[Cover Story] 이건희 회장 리더십이 ‘1등 삼성’ 키웠다
일본에서 삼성전자 쇼크가 처음 일어난 것은 지난 2004년이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10조원이 넘는 이익을 올린 것이 일본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는 일본의 대표적 전자업체 7개사가 벌어들인 돈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충격은 받은 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삼성전자의 역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69년 독자적인 기술이 없어 일본 산요의 기술로 흑백TV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삼성전자는 출발했다.

그런 삼성전자가 1980년대 반도체 왕국인 일본을 바로 옆에 두고 '안될 일을 하고 있다'는 세상의 비웃음 속에 반도체 사업에 진출해 어느덧 확고한 세계 1위 자리를 꿰차자 일본 내에서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당시 삼성전자의 경쟁력 비결을 이건희 회장에게서 찾았다.

2005년 일본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전자업계의 위기'라는 기사에서 "왜 일본에는 이건희 같은 경영자가 없는가"라고 자문했다.

올해는 2004년보다 삼성전자와 일본 업체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

당시 일본 기업과 언론이 느꼈던 불안감은 닛케이가 분석한 것처럼 '경영능력의 차이'로 현실이 된 셈이다.

⊙ 반도체 부문 이건희의 승부수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이 처음 갈림길에 선 것은 1987년이다.

지금은 우스꽝스러운 용량이지만 당시 과제는 4메가 D램 개발이었다.

삼성의 고민은 트랜지스터의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회로를 고층으로 쌓을 것인가 아니면 회로를 파들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쌓는 것은 스택방식이라 하고 파들어가는 것은 트렌치 방식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들은 이건희 회장은 주저하지 않고 스택방식을 택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화하려고 한다. 두 기술을 단순화해보니 스택은 쌓는 것이고 트렌치는 지하로 파고 들어가는 것인데 위로 쌓는 것이 더 쉽다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대성공이었다. 당시 세계 D램 시장 1위였던 일본 도시바는 트렌치방식을 택함으로써 수년 후 선두자리를 삼성전자에 빼앗기게 된다.

이 회장은 1993년에는 반도체 5라인을 깔면서 두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세계표준은 6인치 웨이퍼였다. 삼성은 8인치를 택했다.

이 회장은 "남들이 하는 것처럼 차근차근 따라가다가는 경제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한다. 월반(越班)하지 않으면 기술후진국에 머물게 된다"며 8인치를 택했다.

면적은 제곱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는 모험을 택했다.

두 번째 모험은 성공으로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D램 부문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회장은 "반도체산업은 타이밍 산업"이라고 규정하고 시간을 앞당기는 게임을 한 것이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낸드플래시 사업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세계 2위인 도시바가 공동 개발,공동 투자를 제안해왔다.

반도체 LCD 등 부품산업은 엄청난 투자비가 들어 시장이 확대되지 않으면 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어 기업들은 공동 투자를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회장은 "독자 기술력으로 앞서가야 한다"며 제휴를 거부했다.

삼성은 현재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독보적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 TV사업에서 보여준 삼성의 실행능력

최근 삼성전자의 효자사업으로 떠오른 TV사업은 이 회장의 의지와 임직원들의 실행능력, 마케팅 파워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삼성의 또다른 강점인 '의사결정 속도와 실행능력'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은 2004년 그룹 차원에서 TV 일류화 사업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전자업계에는 지금도 "TV시장을 장악하는 회사가 가전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TV는 중요하다.

소니가 전자왕국으로 군림했던 것도 세계 TV시장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였다.

당시 이 회장은 "아날로그 방식에서는 우리가 출발이 늦어서 졌다. 하지만 세상은 디지털시대로 넘어가고 있어 출발선이 같기 때문에 우리도 1등을 할 수 있다"며 TV사업을 독려했다.

당시 TV시장은 브라운관에서 LCD로 급격히 수요가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회장의 명령을 받은 삼성전자 직원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세계시장에서 같은 급의 TV가 소니제품은 100만원에 팔린다면 삼성제품은 68만원에 팔릴 정도로 소니가 월등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삼성 엔지니어들에게 "소니는 신과 같은 존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일류화추진위원회가 발족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반도체 부문에서 일하던 300명의 연구원은 TV부문으로 옮기라는 인사명령을 받았다.

반도체 연구원 한 명만 옮겨도 공장장인 이윤우 사장(현 대표이사 부회장)의 별도 결제를 받아야 할 만큼 반도체에 집중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충격적인 조치였다.

그만큼 TV사업 육성에 대한 이 회장의 의지가 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회장의 명령을 받은 삼성 임직원들은 TV의 품질과 디자인을 혁신하고 다른 회사보다 한발 먼저 대형 TV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또 인간의 뇌처럼 TV의 모든 성능을 조정하는 자체 크리스털엔진 칩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일본 기업들이 유럽과 북미 등에 역량을 집중할 때 삼성은 이 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물론 남미, 동남아, 동유럽, 인도 시장도 꾸준히 공략했다.

이는 향후 삼성이 일본 업체들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글로벌 경영'의 발판이 됐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2006년 말 세계 TV시장 1위 자리에 올랐다.

⊙ 품질경영의 상징 휴대폰

1995년 3월 이건희 회장은 삼성 휴대폰 불량률이 높다는 보고를 받고 분노했다.

그때 나온 충격적 장면이 화형식이다.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 150억원어치에 달하는 15만대의 휴대폰을 한곳에 모아놓고 불을 질러 버린 것.

삼성 직원들은 이 광경을 보고 품질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갖게 됐다.

이후 삼성전자는 국내 시장에서 모토로라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세계시장에서도 지난 2006년 11.3%를 기록한 후 2007년 14.4%,2008년 16.7%로 노키아에 이어 2위권까지 치고 올라왔다.

삼성이 수십년간 쌓아온 품질경영이 성과를 낸 셈이다.

김용준 한국경제신문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