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서울 복판에 ‘라이터 돌’ 파는 사람이 있었다. 가스라이터가 나오면서 ‘라이터 돌’파는 장사가 하나 둘 문을 닫았지만, 이 분은 여전히 라이터 돌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장사가 안 되지.’하며 매일 한탄을 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채 말이다. 아무리 땅이 꺼져라 한탄해도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거슬러 60년대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자전거를 만드는 두 개의 라이벌 공장이 있었다. 한 곳은 자전거만 고집했다. 더 빨리 많이 만드는 데만 주력했다. 하지만 다른 공장 사장은 기름과 전기로 가는 엔진의 출현에 주목했다. 그리고 해외 오토바이를 조립하고 자동차를 조립하더니, 마침내 굴지의 자동차회사로 거듭났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장사’와 ‘사업’의 차이를 알아야한다.
장사는 단지 물건을 파는 일이다. 사업은 장사를 하는 점에서는 같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장사를 통해 사회를 읽고 인간의 생활을 일구는 일. 즉, ‘사업=장사+문화’다. 어느 시대나 장사는 같지만 문화는 항상 역동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 문화를 따라잡으면 사업가, 따라잡지 못하면 장사꾼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인적조직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공직자가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퇴직을 할까요, 아니면 계속 있을까요?”
실망할 줄은 알았지만 나는 그분에게 완곡하게 이렇게 권했다.
“그동안 유지된 것도 감사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 다른 공직자도 같은 질문을 했다.
“저는 계속하고 싶은데....후배들을 위해서 그만 둘까요, 말까요?”
“뜻대로 하세요. 단지 지나친 욕심을 내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두 사람에게 각각 다른 충고를 드린 이유는 별거 없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틀을 구비하고 있느냐 아니냐 이것이 문제였다. 첫 번째 분은 인사권 인맥에 의존하여 술사고 밥 사는 것이 일이었다. 반면 두 번째 분은 얼굴도 모르는 다수 직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세상이 달라졌다. 나라님도 매일 국민들의 눈치를 살피는 마당에 공직자로서 자세가 참신하지 못했다. 그런 자세로는 직원들을 이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문화는 공기와 같다. 공기는 어디든 있으면서 머무는 법 없이 항상 흐른다.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 종교까지도 이런 문화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만약 조직에 새로운 문화의 숨결을 불어 넣으려하는데, 너무나 견고한 전통의 틀에 갇혀있어서 근본적인 개선이 어렵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라면 과연 어찌할 것인가. 용광로가 고장 나서 식으면 다시 불을 지피는 것 보다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성능 면에서나 절대 유리하고 한다. 견고한 전통 문화에 너무 쳐져 있는 틀은 고치기보다 무너뜨리고 새 집을 지어야한다. 어느 분야건 문화에 뒤처지면 단지 얄팍한 장사꾼으로 기록될 따름이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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