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개혁 진영도 일부 재평가 수용 움직임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한국인의 게으르고, 의타적이고, 수동적인 국민성을 바꿨고 경제기적의 원동력이 됐다."

"민주주의를 하면서도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주장은 매우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유신과 경제성장을 따로 보는데, 결국 이 둘은 '양날의 칼' 이다."

1974년 유신체제를 견딜 수 없어 혼자 호주로 떠났다는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의 말이다.

"박정희가 싫어서 떠났고 지금도 박정희 개인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김 교수는 지난달 19~20일 연세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30주기 국제학술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적극 설파했다.

⊙ 박정희 시대에 탄생한 국민성

[Cover Story] 박정희 시대 ‘할수 있다’ 정신이 한국을 이만큼 키워냈다
흔히 박정희 시대의 성과로 경제개발을 떠올린다.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달성할 수 있었던 기반은 박정희의 개발독재시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하지만 국민성 개조와 같은 소프트파워 역시 대단한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다.

박정희 시대 이전 한국인은 게으르고,의타적이며,수동적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했고 '엽전' '짚신'이라고 자신을 비하했다.

장준하 함석헌 한태연 같은 지식인들도 국민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정희는 국가 건설을 하려면 국민성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새마을운동을 통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캠페인을 일으켰다.

국민에게 자신감과 불굴의 의지를 불어넣었고 경제기적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새마을운동은 초기에는 국가가 주도했지만 대중들이 초가집이 바뀌고 마을길이 뚫리는 것을 보면서 신바람이 나서 참여했다.

박정희의 '할 수 있다'는 정신은 산업화뿐만 아니라 민주화로까지 이어졌다.

'할 수 있다'가 유신체제가 들어서면서 '안 되면 되게 해'로 바뀌며 국가권력이 도덕성을 상실했고 애초 '할 수 있다'가 가진 도덕성은 민주화 세력으로 넘어갔다.

당시 대학생들은 죽을 각오로 독재체제에 맞서 투쟁했고 그런 대학생들 중 근면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산업화의 주역과 민주화의 주역이 일란성 쌍생아처럼 함께 태어났다.

입장과 철학은 달랐지만 진정성과 헌신,열정과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한국인이 출현한 것이다.

⊙ 탁월했던 경제적 통찰력

1960년대 우리나라는 가진 것이라곤 노동력 밖에 없었다.

천연자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축적된 자본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 10년 남짓,미국의 원조에 의존했고 매년 '보릿고개'로 불리는 식량난을 겪어야 했다.

박정희 시대에 우리나라는 수출주도,대기업 우선,불균형 성장 등의 경제정책을 추진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2차대전 후 남미 국가들이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할 때 우리나라는 강력한 수출주도 정책을 폈다.

경제 각 부문을 골고루 발전시키는 균형성장 대신 대기업,중화학공업을 적극 육성하는 불균형성장 정책을 추진했다.

대기업과 중화학공업은 자금 인력 규제 등 모든 면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삼성 현대 LG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고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연관산업 효과가 큰 산업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중소기업 중심인 대만은 국산차들이 거리를 누비는 우리나라를 부러워한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관료들의 역할도 컸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 프로젝트는 젊은 관료들의 열정과 헌신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 진보 · 개혁진영도 '박정희 재평가'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박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를 맞아 대변인 명의의 공식 논평을 냈다.

그동안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며 박정희 정권에 뿌리를 둔 '산업화 세력'과 정치적 대립각을 세워왔던 민주당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우상호 대변인 스스로 "10 · 26에 대해 그동안 정당이 논평을 낸 적이 거의 없다"고 했을 정도다.

산업화 세력의 적자(嫡子) 격인 한나라당이 이날 공식 논평이나 성명을 내지 않은 것과도 대비됐다.

우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오래된 역사에 대해 대개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그 행복했던 기억을 추억하려 하고,가슴 아팠던 기억이 있던 사람은 같은 사건이어도 가슴 아팠던 기억을 더 부각시키려 하는 현상이 있다"면서 "대한민국에 있어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바로 그러한 정점에 서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시절에 대한 '행복했던 기억'을 언급,박정희 정권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우 대변인은 "다시는 5 · 16 쿠데타 같은 불행한 역사가 없어야 하고 10 · 26 같은 불행한 일도 더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더욱 더 확고히 뿌리 내려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 모두가 다시금 느끼는 10 · 26 30주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민주당의 이날 논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돼온 우리 사회의 '박정희 재평가'를 일정 부분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진보학계에서도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있다.

지난달 19~20일 연세대에서 열린 '박정희와 그의 유산:30년 후의 재검토' 학술회의는 진보 · 중도 · 보수 쪽이 함께 모여 '박정희 노선'과 한국식 발전국가 모델에 대한 외국 학계의 평가와 시각을 소개했다.

진보 · 개혁 성향의 학술단체와 싱크탱크는 11월9일 박정희 시대를 재조명하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둘 다 일방적 평가를 넘어 객관적으로 '왜 아직 박정희인가'를 논의하겠다는 취지인데 11월 토론회는 지금까지 성장 신화가 수용되는 원인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진보 · 개혁 성향 학계에서도 박정희 시대를 독재와 저항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지 않고 그 시대의 복합적 측면을 인정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 것이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