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트렌드나 집단을 뜻하는 신조어를 만나면 반갑다. 용어가 먼저인지, 그런 트렌드가 먼저인지 궁금할 정도로 정곡을 찌르는 단어의 조합이면 특히 그렇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프로슈머(prosumer)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기억이 난다. 미래의 소비자는 단순히 소비(consume)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을 생산(produce)하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이 참신했다.

최근에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신조어를 만났다. 컨슘오서(Consum-Author)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소비자(comsumer)인 동시에 콘텐츠의 저자(author)라는 의미다. 프로슈머에 비해 컨슘오서는 패션, 서비스 같은 감성적인 상품 냄새가 더 짙다.

컨슘오서들은 디자이너들이 '던져주는' 옷을 사입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트렌드를 창조하고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트렌드가 돼 디자이너들의 작업에 오히려 영향을 미친다. 상품기획자는 이제 소비자를 대할 때 수동적인 인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유행을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그들을 보아야 한다.

이 용어를 들은 건 최근 방한해 워크숍을 개최한 이탈리아 최고의 디자인스쿨 도무스아카데미 행사장에서였다. "상품을 만들기 전에 지금 시장에서 어떤 새로운 집단이 움직이느냐를 제대로, 먼저 알아야 한다"(엘리자베타 파시니 교수)는 말이 와닿았다. 특히 전 세계를 상대로 새로운 소비집단 및 트렌드 조사를 벌인 그 스케일을 보면서 왜 이탈리아가 패션에 강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자, 그들이 말하는 컨슘오서는 도대체 어떤 집단인가. 컨슘오서의 유형은 10가지다. 이름만 나열해 보면 이렇다. 우아한 10대(Posh Teens) 자기표현형 10대(Expo Teens) 멀티플레이어 집단(Linker People) 개성있는 외동들(Unique Sons) 신감각 여성집단(Sense Girls) 지적인 중년층(Mind Builders) 독립적인 여성들(Singular Women) 사치스런 남성들(Deluxe Men) 규범파괴자들(Normal Breakers) 탐미적인 노년층(Pleasure Growers) 등이다.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낯설 정도로 새로운 분류다.

특히 관심을 끄는 중장년 집단 가운데 2개만 보자. '독립적인 여성들'은 자신감에 넘쳐 약간은 거만하기까지 한 새로운 여성그룹을 말한다. 나이는 35~50세로 브라질에서 전형적인 집단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소비를 이끌어내려면 창의성이 넘치는 예술적인 용어로 다가가야 한다.

'탐미적인 노년층'은 나이가 60이 넘은 사람들 가운데 성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예전부터 자신이 간직해온 이상을 다시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집단은 나라로 보면 미국에 가장 많고,이들은 레저나 취미에서도 쾌락적인 동시에 지적인 경험을 높일 수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장년이 대세다" "여성 소비자를 주목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던 터라 컨슘오서라는 개념이 더 와닿았다. 프로슈머의 시대가 금방 개막된 것처럼, 컨슘오서의 시대도 이미 우리 옆에 와있다는 느낌, 신조어에 관한한 영어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권영설 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