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이하 상트대) 물리학부 대형 강의실.화학원소 주기율표가 칠판 한쪽에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제정러시아 총리의 명령으로 상트대 설립에 참여한 과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고안한 주기율표다. 그는 보드카의 알코올 도수가 40도일 때 가장 이상적인 맛을 낸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배출한 상트대는 모스크바국립대와 함께 러시아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꼽힌다. 물리학부의 경우 전국의 수학과학영재학교를 나온 수재들 가운데 매년 200명 정도만 들어올 수 있다. 대학원생을 포함한 학생 1200명에 교수진이 700명이어서 교수와 학생이 1대1로 토론식 강의를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알렉산더 치르조프 물리학부 학장은 "상트대는 전통적으로 세계 최고의 물리학을 가르치는 게 목표"라며 "상트대에서 물리학 인력을 공급하지 않으면 미국 유럽 등 서방의 대학이나 기업연구소 등은 제대로 연구를 진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트대가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 주요 지역의 기초과학 인력을 공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주과학이나 군사무기 분야에서 앞선 러시아의 힘은 튼튼한 기초과학에서 나오고 있다고 치르조프 학장은 강조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상트페테르부르크 폴리테크닉대(이하 상트폴리텍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빅터 크라스노체코프 대외협력담당 부총장은 "설립 당시 러시아의 산업을 이끌어갈 엔지니어링 지식을 가르치도록 만들어진 학교"라며 "지금은 러시아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지멘스 히타치 GM 등 산학연계를 맺은 기업의 국적만 73개국에 이른다"고 밝혔다. LG전자가 이곳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대학과 영재학교의 연계를 통해 수학 · 과학 영재들을 일찌감치 육성하고 있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콜모고로프과학수학영재학교(사진)는 모스크바국립대 교수가 직접 나와 가르치며 기업 연구소에 속한 과학자도 강의를 한다. 교육 과정의 50%만 교육부 지침을 따르고 나머지는 과학 · 수학에 집중할 수 있다. 아나톨리 차소프스키 콜모고로프과학수학영재학교장은 "진학이 목적이 아니라 재능 있는 아이들이 계속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창의성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에 대한 자부심를 바탕으로 상트대는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에 물리학부 분교를 설치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