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북동쪽으로 40㎞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 '즈베즈드니 고로드(별의 도시)'.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 중력가속기에서 방금 나온 러시아 우주인 후보가 어지러운 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온 몸을 묶은 상태에서 전후좌우로 360도 회전하는 가속기는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지만 훈련 교관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8G(중력가속도) 이상의 압력을 견뎌내야 한다"며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가 위치한 즈베즈드니 고로드는 도시 전체가 우주인 훈련과 관련된 곳이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도 이곳에서 8개월 가까이 훈련을 받고서야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었다. 가가린센터에는 통상 30명 정도의 우주인 후보가 훈련을 받지만 이들을 위한 지원인력은 수만명에 달한다.


평균 7년 훈련받아야 우주로 나가

러시아에서 우주인이 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공군 조종사나 민간 조종사로 경력을 쌓은 뒤 도전하거나 모스크바국립항공대(MAI) 등에서 전자 · 기계 관련 학부를 졸업하고 후르니체프(나로호 제작 업체)나 에네르기아 등 연구소에서 우주 관련 연구를 진행하다 선발되는 경우다.

경로는 단순하지만 우주인이 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대학 가운데 우주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1930년대 항공우주 전문 교육기관으로 설립된 모스크바국립항공대(MAI).블라디미르 라스토구에프 모스크바국립항공대 부총장은 "러시아의 두 번째 여자 우주인이었던 스베트라나 사비스카야를 포함해 20명 남짓의 우주인을 배출했다"며 "MAI에 들어올 수 있는 학생도 전국 20개 고교에 한정된다"고 말했다. 엘리트 중 엘리트만이 MAI에 들어올 수 있고,졸업자 가운데 극소수만이 우주인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주인은 어떤 사람이 될까. 세르게이 사베리에프 러시아 연방우주청 부청장은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심리적으로 냉정할 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 빨리 판단하는 능력이 우주인의 요건"이라고 말했다. 우주정거장 등 폐쇄된 공간에서 몇 개월씩 지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제어를 잘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잘 풀 수 있는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우주인 후보로 선발되더라도 평균 7년간 1만 가지의 각종 문제해결 훈련을 받아야 우주로 나갈 수 있다. 우주선이 발사되는 순간이나 귀환모듈을 타고 지구로 돌아올 때,우주정거장에서 머무르는 동안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철저히 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무중력 상태인 우주공간에서는 음식을 먹고 배설하는 것조차 지구와 다르다. 동물적 감각으로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심지어 정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는 버릇까지도 버릴 수 있도록 반복훈련을 한다.

끊임없는 반복 학습

인류 첫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지구 궤도 비행을 한 때가 1961년.그 이후 48년 동안 수많은 우주비행이 이뤄지면서 쌓아진 경험은 그대로 매뉴얼이 됐다. 생명을 잃기도 했던 수많은 사고와 돌발상황의 교훈들이 집대성돼 있다.

훈련센터는 매뉴얼을 기준으로 수없이 반복하도록 우주인을 훈련시킨다. 우주정거장에서의 사소한 스위치 작동 하나까지도 철저히 매뉴얼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비상상황이 생긴 경우 몇 번째 매뉴얼 어느 페이지를 보라는 매뉴얼도 있을 정도다.

우주인의 임무에 따라 매뉴얼이 각각 다르고 미국 우주인 등이 함께 훈련을 받는 점 때문에 각각의 매뉴얼 보안은 철저히 유지된다. 연방우주청의 스베트라나 가르비시는 "매뉴얼에 대한 접근권이 각기 달라 전체적인 규모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훈련 과정도 일일이 체크되고 또 기록된다. 심장박동수 등 신체적 변화뿐 아니라 정신감정도 꾸준히 관찰된다. 센터에는 유리 가가린이 훈련받을 때부터 우주인의 심리상태를 진단한 정신과 의사가 있을 정도다. 심리학적 진단이 부정적으로 나온다면 아무리 훈련 성과가 좋아도 도중하차해야 한다.

창의성이 가장 큰 덕목

매뉴얼대로 움직인다는 점 때문에 흔히 우주인을 '모르모트'나 로봇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주인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창의성이다. 수많은 변수를 다 고려했더라도 뜻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게 우주공간이고,그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빠른 판단력과 함께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주연방청은 창의적 사례로 1997년 미르우주정거장에서 발생한 충돌사고를 꼽는다. 당시 무인보급선 '프로그레스'호와 미르가 충돌하자 사령관인 알렉산드르 라조킨(Aleksandr Lazutkin)은 미르에서 공기와 압력이 빠져나간다고 직감했다. 우주정거장의 소음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라조킨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고 3명의 우주인은 침착하게 안전지대로 이동하면서 균열지역과 연결된 해치(문)를 닫았다. 매뉴얼을 찾아보거나 지상통제센터(MCC)와 연락을 취한 뒤 지시를 기다릴 상황이 아니었던 것.곧바로 미르의 전원이 꺼졌지만 그들은 그동안 배운 비상상황 매뉴얼과 자신의 직관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이소연 박사는 "주어진 환경과 제한된 여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창의성은 우주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매뉴얼이 예측하지 못하는 세부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결국 현장에서 우주인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모스크바(러시아)=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