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추격 원천봉쇄"
불황기 역발상 경영
미국 뉴저지주 리지필드파크에 있는 삼성전자(57,700 +1.58%) 미국법인은 10여년 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위해 9층짜리 사옥을 현지 부동산 업자에게 판 뒤 아직도 빌려 쓰고 있다. 3년 연속 미국 TV 시장 석권,올해 북미 휴대폰시장 첫 1위 등극을 앞두고 있는 삼성의 화려한 질주와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작은 임대 사무실에서 전자를 비롯해 물산 제일기획 등에서 나온 1000여명의 주재원들이 다닥다닥 붙어 일한다. 엄영훈 삼성전자 미국법인장(상무)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앞을 향해 달려 나가자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미국 법인은 해외 주재원들의 '무덤'으로 불렸다. 좋은 생활환경에도 불구하고 새로 발령받은 임직원들은 자칫하면 직장생활의 마지막 근무지가 이곳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부담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고 한다. 세계 최대 가전시장이라는 이름은 빛 좋은 개살구.TV에서는 일본 소니를 필두로 파나소닉과 샤프가,휴대폰에선 미국 모토로라가 누구에게도 도무지 용인하지 않을 듯한 '절대강자'의 입지를 굳혀놓고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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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기'LED TV로 소니 아성 흔들다

2007년 소니를 제치고 미국 진출 29년 만에 마침내 디지털 TV시장 1위에 올랐을 때도 삼성은 샴페인을 터뜨릴 수 없었다. 점유율 차이는 3%포인트 안팎이었고 경쟁사들은 삼성이 대당 1000달러 미만 중 · 저가품에서 단순히 물량으로 미국을 '평정'했을 뿐이라고 폄하했다. 북미시장 TV 점유율은 1위에 오른 뒤에도 3년째 '마(魔)의 20% 벽'에 가로막혀 있다. 양대 시장 중 한곳인 유럽 점유율이 30%대를 주파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문제는 역시 소니가 장악하고 있는 고가 제품,프리미엄군에 있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미국 법인이 액정표시장치(LCD) 제품보다 대당 700~800달러 비싼 LED TV 판매 계획을 공개했을 때 많은 현지 바이어들은 코웃음을 쳤다. 오상훈 미국법인 전략기획부장은 "경제위기로 그렇지 않아도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는데 고가 제품이 팔릴 턱이 없다는 게 바이어들의 한결같은 얘기였다"고 말했다.

소니 파나소닉 등 경쟁사들은 LED보다는 LCD에 집중했다. 하지만 삼성은 포도주잔 모양을 본떠 2006년과 2007년 글로벌 대박 상품이 된 보르도 TV를 이어나갈 새로운 종(種),후속작이 필요했다.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LCD TV 가격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게 뻔했다. LCD TV시장이 침체할 것이라는 보고서들도 쏟아져 나왔다. LED TV는 경기 불황을 정면 돌파할 승부수였고,위기 속에서 오히려 경쟁사를 따돌릴 기회였다. 그로부터 근 1년.LED TV는 삼성전자의 진정한 전성시대를 여는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We love SAMSUNG,They love SAMSUNG"

지난 22일 뉴저지 버겐카운티 도심에 있는 베스트바이 매장에서 만난 칼로스 매니저(46)는 삼성전자에 대한 소비자 평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했다. "We love SAMSUNG,They love SAMSUNG." 미국 최대 가전제품 판매점인 베스트바이는 삼성전자 미국 판매량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최대 유통망이다. 베스트바이는 지난 7월부터 매장 입구쪽 한켠에 삼성전자 LED TV만을 전시 · 판매하는 공간을 임대료를 받지 않고 따로 떼줬다.

베스트바이가 삼성 LED TV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미국 내 베스트바이 1000여개 매장 중 이런 삼성 LED 월(wall)을 설치한 곳이 700개 정도다. LCD와 LED의 가격차는 요즘 500달러대로 좁혀졌고 두 제품을 비교해본 소비자들은 LED를 선택하게 된다고 칼로스 매니저는 설명했다. 이에 자극받은 월마트 코스트코 등 다른 유통망들도 베스트바이 방식의 삼성 LED TV 전담 매장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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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시장에서 삼성 LED TV는 여태껏 한번도 작성해본 적이 없는 90~93%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연말까지 북미지역에서만 90만~100만대가 팔릴 것으로 삼성전자 미국법인 측은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 판매 예상치인 250여만대의 절반에 이르는 물량이 미국과 캐나다에서 팔리는 셈이다.

◆2세대 LED TV 투입,경쟁사 추격 차단

LED TV를 앞세워 프리미엄군에서도 처음으로 소니를 확실하게 제치면서 삼성전자는 '빠른 추격자'에서 '시장 선도자'로 변신하게 됐다. 삼성전자의 미국 TV시장 API(Average Pricing Index · 평균가격지수)는 요즘 140~150선으로 올라섰다. API가 100이면 시장 평균 수준이란 뜻이다. 경쟁사 API는 20포인트 정도 낮은 120~130대인 것으로 삼성 측은 보고 있다.

엄 법인장은 "경기 불황으로 2000달러 이상 TV 수요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음에도 삼성은 LED라는 새로운 시장과 상품 카테고리를 창출해내는 데 성공했다"며 "LED 파운더(founder)로서의 삼성의 명성은 소니의 워크맨 신화와 맞먹는 시장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소니 파나소닉 등의 추격에 대비해 비장의 무기로 2세대 LED TV를 준비하고 있다. 화질과 디자인에서 한 단계 진화하고 3D(입체),IP(인터넷) TV와 연계한 차세대 전략 제품이다. 내년 상반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 2세대 LED TV를 투입해 삼성이 더 좋은 제품을 내놓기 힘들 것이라는 시장과 경쟁사들의 예측을 다시 한번 뒤흔든다는 전략이다.

리지필드파크(미국 뉴저지주)=유근석 기자 y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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