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공감한다. 데이트할 때 뭘 먹고 뭘 할지 생각해오지 않고 만난 다음 "어디 갈까" "뭐 먹을까" 하면서 시간 끄는 남자가 얼마나 짜증나는지.남자도 할 말은 있다. '마음대로 하라'고 해놓곤 막상 마음에 안들면 눈을 흘기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추란 말이냐"가 그것이다.

'마음대로 해라'에 내포된 뜻은 복잡하다. '정말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쪽 마음을 잘 헤아려 알아서 행동하라'거나 '나는 절대 동의할 수 없지만 네가 그렇게 주장하니(우기니) 마음대로 해봐라,이제부터 나랑은 상관 없다'는 의미가 강한 수가 많다.

뜻은 다소 다르고 정도의 차이도 있지만 책임을 상대에게 미룬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 마음은 죄다 거기서 거기인지 미국인들이 일상 대화 중 가장 듣기 거북한 말로 '마음대로 해(whatever)'를 꼽은 데 이어 중국인들도 비슷한 뜻인 '쑤이볜(隨便)'을 꼽았다는 소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Whatever'의 경우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고,'쑤이볜'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whatever는 'whatever you say'의 준말.'네가 뭐라든 난 모른다'는 식의 반감과 불만이 뒤섞인 말이다. 상대가 누구든 이런 식의 말이 나오면 대화는 끝난다.

부모가 자식을 향해 "마음대로 해봐라" 하든 자식이 부모를 향해 "마음대로 하세요" 하든 말한 쪽은 등을 돌리고 자리를 뜨게 마련이고 사태는 걷잡기 어려워진다. 부부 싸움도 그렇고 동료간 혹은 상사와 부하직원 간에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이 꼽은 '쑤이볜'은 '알아서 하라'에 가깝다.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힌 이유 역시 모든 일을 상대방에게 맡기는 게 '기분 나쁘다'는 것이다. 상대의 부아를 돋우기 위한 것이든,책임을 회피하고 상대의 진심을 재보려는 것이든'마음대로 하라'고 하다 보면 둘 다 개운하지 않고 가슴 속엔 응어리가 남는다.

한쪽에서 "마음대로 하라"고 내뱉고 일어서는 순간 "그러지 말고 다시 얘기하자.무조건 내말에 따르는 걸 원하는 건 아니다"라고 하면 상당부분 수그러든다고 한다. 약이 오르고 괘씸해도 다시 한번 돌려세우면 저쪽 역시 조금은 양보한다는 것이다. 알아서 하라고 떠맡기거나 내버려두기보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제시하고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는 쪽이 불필요한 힘겨루기나 결별을 피하는 방법이다 싶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