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의 칼럼이 여러 명사들의 강의나 칼럼으로 재인용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들이 보라고 쓴 공개 칼럼이 많이 인용된다는 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단지 바램이 있다면 인용하시는 분들이 출전을 바꾸지 않았으면 하는 것.
김홍도의 명작 '주상관매도'에는 아름다운 화제가 적혀 있다. "늙은 나이에 보이는 꽃은 안개 속을 보는 듯 하네." 그러나 이는 김홍도가 지은 한시에서 따온 구절이 아니다. 중국의 시성 두보가 죽던 해에 쓴 작품의 구절을 따온 것이다. 어떻게 한국 최고의 화가 김홍도가 중국의 시성인 두보의 시를 마구 베꼈단 말인가.

그러나 이는 엄연히 표절이 아니다. 한시 수사법 중 가장 중요한 기법인 '점화(點化)'라고 한다. 남의 시문을 적절히 베껴와 철저히 자기화해 눈가림을 하는 기법이지만 절대로 자신이 창조해낸 작품이라고 우기지 않는다. 당대 시인들은 두보의 작품이라면 거의 외우다시피할 정도로 사랑했다. 그렇다면 한시에 능했던 김홍도가 이를 모를 리 없지 않겠는가.

김홍도 역시 두보가 죽던 해 썼던 이 시를 깊이 이해하면서 절벽 위에 핀 매화를 바라보는 노인의 심정이 시를 노래하던 두보와 같음을 표현하고 싶었으리라.

동양화에서도 모방을 잘하는 것은 그림을 판단하는 6가지 기준인 '육법' 중의 하나였다. 남의 그림을 잘 베끼는 것이 자기 창조의 시작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모방이 모방에 그쳐서는 안됐다. 모방을 하되 자신만의 색채와 감각이 살아있어야 했다. 이렇게 온고지신하는 자세로 그린 그림이야말로 진짜 그림으로 인정됐다.

과거 모방을 회화의 '육법' 중의 하나로 여겼던 전통 때문에 진위여부를 두고 논란도 많다. 고대 중국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던 이의 그림은 전무하고 기록만 남아 있다가 예전에 모방작이 발견됐다. 진품이 아닌 모방작임이 밝혀지자 많은 미술 비평가들이 낙담했으나 현재는 모방작도 최고가를 상회한다. 이는 아름다운 모방작의 진가가 발휘됐기 때문.

이처럼 모방은 동양의 미학을 창조하는 중요한 수단이요, 지침이었다. 그러나 최근 모방은 중대 범죄 중 하나가 됐다. 특히 지적재산권에 대한 첨예한 법적 공방이 끊이지 않는 요즘엔 자칫 잘못하다가 표절 시비에 휘말릴 위험도 크다. 최근 모 종교 사이트에 내 글이 올라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쓴 글을 정리해 마치 자신들이 창조해낸 생각인양 올려놓았던 것. 이를 발견한 분이 급히 나를 찾아와 글을 보여주며 강력하게 항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저 같은 사람은 이런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자연과 영계에 맡기면 자연스럽게 일이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예전에 스스로 나를 찾아온 분도 있었다. 30대의 작가로 20대 초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줄곧 방송국과 영화 관련일을 하고 있는 명문대 출신의 재원이었다.
"제가 이번에 쓴 시나리오에 법사님의 아이디어를 허락없이 인용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내 앞에 내밀었다. 만약 내가 삭제를 원하면 얼마든지 고치겠다는 것이었다. 막상 이렇게 사과부터 하니 할말이 없었다. 오히려 어찌나 고맙던지.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시고 내 글보다 더 좋은 영상을 만드세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힌트가 될 만한 것을 가르쳐줬다. 덕분에 시나리오의 많은 부분이 수정될 위기에 놓였지만 전작보다 뛰어난 작품이 되리란 예감이 들었다.

이런 면에서 모방과 창조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강탈하느냐 떳떳이 밝히고 쓰느냐. 리메이크도 명백히 창조다. 베끼기의 규칙만 잘 지켜진다면, 한시의 '점화'나 동양화의 '모방'처럼 훌륭한 예술도 승화시킬 수 있다. 섣부른 베끼기로 한낱 위작이나 표절로 전락하진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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