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4층 대강당.주말인데도 자리를 꽉 채운 300여명이 내뿜는 열기로 후끈하다. 이들은 2주 앞으로 다가온 '파생상품 투자상담사' 자격증 시험에 대비해 은행 측이 마련한 '족집게 과외'를 듣기 위해 서울지역 각 영업점에서 온 직원들.한 직원은 "자격증을 따려고 3개월 전부터 주말마다 시험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며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아예 휴가까지 내는 동료도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파생상품 투자상담사' 자격증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내년 2월4일부터 은행 창구에서 고객들에게 선물환이나 스와프 등 파생상품 거래를 권유하거나 상담 업무를 하려면 이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은행마다 자격증 보유자가 크게 부족해서다. 제도 시행이 3개월여밖에 남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은행이 필요한 최소 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해 영업 차질을 걱정하고 있다.

전국에 1200개의 지점이 있는 국민은행의 경우 지점당 최소 1명의 자격증 소지자가 있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자격증 취득자는 790명에 그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정상적인 영업을 하려면 4000명가량이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내년 2월까지 이 인력을 확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지점당 파생상품 투자상담사가 1명 이상,모두 900명 정도가 필요하지만 현재 자격증 보유자는 절반에 불과하다. 신한 하나 외환 기업은행 등 대다수 시중은행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각 은행들은 직원들의 자격증 취득을 돕기 위해 주말마다 집단 특강을 실시하고 전국 지점을 돌며 이동 교육도 병행하는 등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외부 교육기관과 협력해 인터넷 교육을 시행하고 자체적으로 시험에 대비한 문제집도 만들어 직원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시험 합격자에게 가산점을 줘 승진 평가에 반영하는 등 특단의 대책까지 마련하며 자격증 취득을 독려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은행들이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으며 애를 써도 자격증을 따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시험 범위가 은행의 파생상품 투자 상담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이 포함되는 등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자격증 시험을 주관하고 있는 금융투자협회가 출간한 교재는 △장내 파생상품 △장외 파생상품 △리스크 관리 및 직무 윤리 △파생상품 관련 법규 등 4권에 걸쳐 모두 1800쪽으로 분량이 방대하다. 이 가운데 장내 파생상품은 은행에서 취급하지 않고 있고 파생상품 관련 법규 내용의 절반가량도 은행 업무와 관련이 없는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규정 등에 할애돼 있다. 1800쪽 중 60% 정도가 사실상 은행원들의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 셈이다.

은행들은 문제 수준도 비상식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창구에서 취급하는 업무는 정형화된 장외 파생상품을 매뉴얼대로 판매하는 것이어서 개념만 이해해도 충분하다"며 "그런데도 시험에는 장내 파생상품,옵션 가격 등 증권사 딜러에게나 요구되는 문제들이 나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강동균/유승호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