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에는 사시사철 냉온수를 공급하는 시설이 구비돼 있다. 그러나 수도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두레박으로 집 마당이나 마을 공동으로 파 놓은 우물물을 긷던 때가 있었다. 형편이 좀 나은 집에는 수동식 펌프가 있었다. 평소 바짝 말라 있는 펌프에 한두 바가지 정도의 물을 붓고 '딸깍딸깍' 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손잡이를 저으면 땅속 물이 빨려 올라온다. 일단 물이 올라오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그다지 힘들게 젓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펌프 위로 붓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마중물'이란 말 속에는 작은 수고가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 숨어 있다.

지난해 발생한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집행에 나서면서 우리 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빨리 위기를 벗어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의 재정 지출도 국가 경제 측면에서 보면 일종의 마중물에 해당한다.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대신 지출을 늘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굳이 국가경제라는 큰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조그마한 손길이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큰 힘이 되고 자립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마치 마중물이 깊은 땅속에서 큰 물을 끌어올리는 이치와도 같다.

외국에서는 취약계층의 자활을 돕기 위한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고 한다.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씨앗을 뿌린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미국의 사회적 기업 액시온(ACCION),영국의 글래스고 갱생펀드(GRF)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우리나라도 30여개의 민간단체가 서민들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활동 중이지만 아직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 영세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의 자활을 목표로 논의되고 제도화되는 '미소금융'의 마중물 역할을 기대해 본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는 2006년 말부터 전국의 71개 상공회의소에 '사랑나눔기업봉사센터'를 설치해 지역사회에서 나눔문화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랑나눔기업봉사센터를 통해 1사 1복지시설 결연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 지금까지 약 950개 기업이 참여해 2600여건의 결연을 맺고 있다.

이제 우리사회도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지 않고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어려운 이웃을 자발적으로 돕는 활동이 확대되고 있는 것 같아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인디언 속담에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희망하는 바람직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가야 한다. 어느덧 가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다. 한 그릇의 마중물처럼 작은 정성이 어려운 이에게 큰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자세로 오는 겨울을 맞이하고 싶다.

김상열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sangyeolkim@korcha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