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내놓은 한 리포트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수석 전략가인 우노 다이스케 이름으로 된 이 보고서는 미국 달러화 가치가 달러당 50엔대까지 추락해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달러화의 역사적 저점이 1995년 4월의 달러당 79엔대였음을 감안하면 달러당 50엔은 상상이 안되는 수준이다. 달러화는 요즘 89~90엔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세계경제가 위기에서 탈출할 조짐을 보이면서 달러화 향방이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과 러시아가 무역거래에 각각 루블화와 위안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거나,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거래 결제에서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 방안을 협의했다는 등 달러 관련 뉴스가 연일 지면을 장식한다. 달러화가 요동치면서 금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도 춤을 추고 있다.

여기서 가정을 한번 해보자.만약 오바마 정부가 달러 약세를 용인하고 1달러=50엔대가 현실화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미국의 대차대조표를 따져보면 미국인들의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질 것이다. 수입상품 가격이 비싸져 생활비가 더 들게 된다. 또 미국의 목소리도 약화될 것이다. 달러화 약세는 곧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평화)'의 퇴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득도 있다. 첫째가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위기의 요인으로 꼽는 세계경제 불균형을 시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달러 약세에 힘입어 미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은 높아질 것이며 이는 무역적자 감축을 가능케 할 것이다. 미국의 지난해 수출액은 1조2874억달러로 독일 중국 등에 이어 3위다. 중국이 위안화 저평가를 통해 2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쌓은 것처럼 약달러는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 헤지펀드업계 대부인 조지 소로스 회장이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미국이 달러 약세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볼프강 뮌샤우도 "약달러는 글로벌 불균형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의 교역상대국 처지는 정반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한국 캐나다 호주 등이 자국 통화 강세로 수출여건이 나빠지고 있다며 벌써부터 아우성이라고 전하고 있다.

1달러=50엔이라는 극한 상황은 쉽게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린백 블루스(Greenback Blues · 약달러로 우울한 세계경제)'는 미국 경제가 본격 회복 궤도에 오르고 미 기준금리가 인상쪽으로 방향을 틀기까지 상당 기간 불가피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내후년쯤이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은 어느 정도나 약달러 시대에 준비돼 있을까. 현재 달러당 1160원 선인 원화 환율은 20년 전인 1990년초엔 600원대였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에도 850~900원에서 움직였다. 우리 기업들은 세 자릿수 환율 시대에 생존할 수 있을까. 또 2543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한국은행은 약달러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은 세워두었을까. 한국이 글로벌 위기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다는 자화자찬이 적지 않다. 한국 경제에 대한 과도한 낙관은 과도한 비관만큼이나 나쁘다. 정부와 기업이 달러 약세 추세에 보다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다.

강현철 국제부장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