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지배구조가 주요 8개국(G8)에서 주요 20개국(G20)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확대된 다자구도 속에서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전선 또한 미국과 북한의 양자대화가 예고되면서 상당한 기류 변화가 점쳐진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 케네디스쿨 석좌교수(73)를 연구실에서 만나 미국의 지배력과 북핵 문제,한 · 미 및 한 · 중 · 일 관계 등을 짚어봤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외관계 분야에서 앞세운 '스마트 외교'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주인공이다.

미국은 여전히 최강국인가.

"분명히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최강국이다. 향후 20년간 유지할 것으로 본다. 최강국으로서의 패러독스는 미국이 혼자서 행동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일수록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협력이 필요하다. 기후변화,핵 확산 등 국경을 넘어서는 지구적인 문제를 한 나라가 해결할 수는 없다. "

중국 부상에 따른 세계 역학구도 변화는.


"중국의 성장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중국이 문제없이 성장한다고 해도 미국을 추월하는데 2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본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했다거나 곧 추월할 것으로 보는 것은 오판이다. 중국의 급성장은 미국의 영향력을 줄어들게 할 수도 있는 반면 미국의 영향력을 더욱 커지게 할 수도 있다. 인도 일본 호주는 중국의 성장을 두려워한다. 세력균형을 위해 미국으로 눈길을 돌릴 지 모른다. 중국이 성장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미국의 힘이 줄어들 것으론 생각하지 않는다. "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데 20년 걸릴 것으로 보는 이유는.

"중국이 연평균 8%의 성장을 하고 미국은 연평균 2~3% 성장한다는 전제를 두고 계산할 경우 약 20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20년 전후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수도 있겠지만 중국이 향후 10년내 미국을 추월하진 못할 것이다. "

경제 분야외에 미국의 경쟁력은 뭔가.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지난해 미국은 1위,올해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스위스였다. 중국은 30위 근처였다. 미국은 경제말고도 경쟁력이 있는 분야가 많다. 법 시스템이나 기업문화 등은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이 증명됐다. 특히 안정적인 정치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얼마나 안정적인지 확실치 않다. 물론 우리는 안정적이길 희망하고 있다. 중국은 국민들의 정치참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인도 한국 일본 등은 이런 문제를 풀어냈다. 중국이 정치 안정을 유지할지,아니면 그렇지 못할지 분명치 않다. 미국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심각하게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해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초기에 달러화 가치는 떨어지지 않고 올랐다. 시장은 미국의 정치시스템을 '안정을 완성한 섬'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 "

일찍이 '스마트 파워'를 주창했는데.

"파워를 얘기할때 군사와 경제 등 하드 파워와 문화 · 가치 등 소프트 파워로 나눌 수 있다. 경제가 파워이동을 촉진하는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선 소프트 파워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때도 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제75회 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이 소프트 파워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발언한 점은 흥미롭다. 어느 한 가지가 최대 요소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매력적인 파워는 하드와 소프트 파워 두 가지를 겸한 스마트 파워가 최고라고 본다. 한국의 경우 경제 성장과 더불어 민주주의가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 이런 과정이 한국식 스마트 파워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관계에서 대화 중심의 스마트 외교를 내세웠다.

"그는 상황에 따라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다. 예컨대 내 생각으로는 소프트 파워가 북한에 큰 효과를 낼 수 없을 것으로 본다. 경제 제재와 같은 하드 파워가 유효할 것으로 생각한다. 대북 지원이 가장 많은 중국이 북한에 최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하드 파워인 군사파워의 적용이 유효하다. 다만 아프간은 미국이 현지인들의 마음을 얻는 소프트 파워 또한 중요하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종종 자문을 해주고 있다. "

미국이 북한에 더 영향력을 가하라고 중국에 종용할 레버리지(지렛대)가 있나.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원한다. 동아시아 지역의 핵 확산을 원치 않는다. 중국은 대북제재를 가해야 한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북한을 제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붕괴에 따른 부담 우려 탓에 강한 제재를 주저한다. "

북미 양자대화가 열릴 가능성이 큰데.

"미국이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다른 북핵 6자회담 참가국들과 공조없이 단독으로 북한과 대화에 나선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과 한국 일본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 미국이 북한과 독자적으로 대화를 한다면 결국 북한의 의도에 굴복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6자회담은 장기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이 핵 보유 국가로 인정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6자회담 참가국들이 이를 북한에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

대화-제재-대화-제재가 반복됐다.

"과거에 우리는 북한이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이행할 것으로 너무 기대한 측면이 있었다. 이젠 북한의 진정한 행동 변화를 원한다. 북한은 핵 사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했지만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북한도 장기적으로는 핵비확산조약(NPT) 의무를 위반하고 핵 실험을 계속할 경우 유리할 게 없다는 걸 인식하게 될 것이다. "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하는 게 지름길이라는 주장도 있지 않나.

"물론 북한의 변화 여부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워싱턴으로 초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북한을 인정하기에는)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그 전에 북한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시기가 적합하지 않아 당장 초청 가능성은 낮다.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의 길을 선택한다면 여건이 갖춰질 수 있다. 북한이 (방북할) 스티븐 보즈워스 북한정책 특별대표에게 어떤 제안을 할 것인지,어떤 합의를 할 것인지 두고 봐야 한다. 개인적으론 미국 대통령이 먼저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길 원치 않는다. 북한이 기존 비핵화 합의를 위반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을 워싱턴으로 초청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에 새로운 북핵 해결 방안으로 '그랜드 바겐'을 제안했다.

"체제 보장,경제 지원 등 그랜드 바겐은 북한의 비핵화가 필수적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은 채 이쪽에서 제공하는 지원만 챙긴다면 바겐은 안된다. 과거에 많은 사례를 경험했다. "

일본에선 50년만에 정권이 바뀌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정권 교체로 양국간에 갈등요소가 없진 않지만 동맹과 국익을 해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어떤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동맹관계를 약화시키고 싶지 않다고 줄곧 말해왔다. 내가 15년전 백악관에 있을 때와 현재를 비교하면 지금의 양국 관계가 더 낫다. "

하토야마 총리가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제안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 중국 일본 3국간 선린관계는 동아시아 발전에 유익하다. 하지만 동아시아 공동체가 미국을 제외한다면 건전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들 국가와 미국간 무역패턴을 보면 미국을 제쳐두고는 경제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다. 중국 시장이 급성장하더라도 중국은 미국 시장을 원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

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이라는 세 거인의 틈바구니에서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일부 한국인들은 미국에 양면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큰 그림에서 본다면 한국이 미국과 가까운 동맹을 유지하는 게 이익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두 거인 사이에 존재한다. 거리는 멀지만 또다른 거인인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 한국은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 한국인들이 반미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익 차원에서 미국과의 동맹은 중요하다고 본다. 한 · 미 동맹 강화 차원에서라도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비준이 필요하다. "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주)=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