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권위의 기성복 패션쇼인 '파리컬렉션'이 한창이던 지난 6일.프랑스 파리의 번화가인 오페라 근처 한 의류매장 앞에 50m가 넘는 긴 줄이 생겼다. 일본 SPA(제조 · 판매 일괄관리,일명 패스트패션) 브랜드 '유니클로'가 지난 1일 문을 연 글로벌 플래그십 매장이다.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비통 매장 앞에 중국 · 한국 등지에서 온 관광객 행렬은 흔하지만 거꾸로 파리지앵들이 패스트패션 매장에 긴 줄을 서는 것은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프랑스 패션계 관계자들은 '개점 효과'라고 애써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이런 풍경이 연출되자 점차 유니클로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듯한 표정이다. 각국 바이어들이 파리컬렉션에 등장한 에르메스 · 샤넬 · 디올 등의 패션쇼를 보러 몰려왔지만 정작 파리지앵들은 값 싸고 질 좋은 '유니클로'에 열광한 것이다.

그 비결이 뭘까. 단순히 싸다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유니클로의 영문 간판과 함께 내걸린 일본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매장에 들어서자 현란한 전광판에는 '이것이 일본의 기술'이란 자신감 있는 문구가 나타났다. 유니클로는 유럽인들이 동경하는 '일본'을 내세워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섬세한 기술력과 디자인,글로벌 패션시장에서 높은 위상 등 일본의 패션 경쟁력이 유니클로를 뒤에서 한껏 밀어주는 것이다.

대중적인 패스트패션뿐 아니라 파리컬렉션에서도 요지 야마모토,이세이 미야케,꼼데가르송 등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높은 명성을 얻고 있다. 일본 특유의 동양적 디자인에 유럽 패션계는 열광한다. 프랑스 명품 '레오나드'도 일본 도자기 문양을 재해석한 디자인을 컬렉션 무대에 올렸다.

한국의 브랜드 파워는 어느 수준일까. 이번 컬렉션에 한국인으론 이상봉,문영희 디자이너의 단 2개 브랜드만 이름을 올렸다. 아직은 국내 디자이너들이 신선한 느낌의 신인 디자이너로 떠오르고 있는 단계다. 파리컬렉션과 함께 열리는 트라노이 전시장에선 국내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 '슈콤마보니' 부스를 발견해 반가웠다. 관계자는 상기된 표정으로 "처음 참가했는데 파리뿐 아니라 밀라노,런던에서 온 바이어들이 높은 관심을 보여 매우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계속 도전한다면 '한국 패션'도 유니클로나 꼼데가르송처럼 파리지앵들을 사로잡을 날이 먼 것만은 아닐 듯하다.

파리=안상미 생활경제부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