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헌이 진화한다
SK텔레콤 데이터사업본부 상품개발팀에 근무하는 이원환 매니저는 지난 7월부터 매주 한 번씩 마케팅 컨설턴트로 변신한다. 친환경 의류업체인 페어트레이드코리아를 방문해 홍보나 판매 촉진 활동 등 마케팅에 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컨설팅해주고 있다.

SK에는 이 매니저처럼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환경이 열악한 사회적 기업에 전수하는 사람이 많다. SK는 이런 전문가를 묶어 사회적 기업 전문 자원봉사단인 'SK 프로보노'를 지난달 발족시켰다. 일반적인 자원봉사와 달리 법률 재무 인사 마케팅 등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자격을 갖춘 직원들이 사회적 기업이나 단체를 지원하는 전문 자원봉사단이다.

현재 프로보노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직원들은 214명.해외 MBA(경영학 석사),미국 및 국내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는 등 개개인의 전문적인 경력이 화려하다. SK 관계자는 "기업의 인적,지적 자원을 나눠 사회적 기업의 자립을 지원하는 SK 프로보노는 기업 사회공헌 활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창간 45주년 기업 사회속으로] (2) "지식·재능을 기부하라"…SK·삼성·KT 등 '프로보도' 이끈다

◆재능을 기부한다,'프로보노'

SK의 사례처럼 전문적인 기술이나 재능을 활용하는 사회공헌을 '프로보노(pro bono)'라고 부른다. '공익을 위하여'라는 의미의 라틴어(pro bono publico)에서 온 말이다.

프로보노는 기부가 중심인 기존 사회공헌보다 한 단계 진화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공헌 활동 수요자인 소외계층 입장에서는 보다 수준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기업들도 사내에 축적된 역량을 활용,사회공헌 활동에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는 직원들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고,지속 가능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도 프로보노의 장점으로 꼽힌다.

프로보노 활동은 전문가를 많이 가진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SK는 아예 그룹 차원에서 'SK 프로보노'를 만들었다. 삼성도 뒤지지 않는다. 삼성전자(46,800 +1.52%)는 2007년 1500여명으로 구성된 23개 전문 봉사팀을 설립했다. 전문 봉사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매년 100~200명씩 늘고 있다. 봉사활동에 필요한 전문 기술은 80여개에 달하는 사내 동아리를 통해 전수된다.

KT는 영위하고 있는 사업을 프로보노로 연결했다. 사내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을 활용,소외계층에 IT 보급과 교육 활동을 벌이는 'IT 서포터스'를 통해 전문성 기부활동에 나서고 있다. KT는 친근한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사회공헌 활동을 광고 캠페인의 소재로 활용 중이다. 한국전력도 1만6000여명으로 구성된 269개의 사회봉사단을 통해 전기시설 무상점검 등 프로보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회공헌도 브랜드 시대

LG그룹은 최근 전 계열사가 함께 사용하는 사회공헌 CI(기업 이미지)와 슬로건을 만들었다. '젊은 꿈을 키우는 사랑'이라는 사회공헌 슬로건과 이 문구를 크레파스로 쓴 손글씨 형태의 로고가 한 세트다.

LG는 사회공헌 CI와 슬로건 제정을 계기로 전 계열사의 사회공헌 활동을 청소년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 중심으로 개편했다. 또 그룹 내에 계열사 사회공헌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두고 계열사들의 사업 내용을 조율하고 있다.

브랜드 마케팅에 사회공헌적 성격을 가미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 스폰서로 참여했던 삼성전자는 성화봉송 캠페인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는 스포츠 마케팅을 기획,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중국인 1531명을 봉송주자로 선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자사의 사회공헌 활동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은 모든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이 고민하는 공통된 숙제"라며 "사회공헌에 브랜드를 붙이거나 광고 등과 연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회공헌을 넘어 사회 마케팅으로

"적절한 기업의 사회공헌은 용을 길들이는 것과 같다. 과정은 힘들지만 잘만 길들이면 명망과 이윤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 저명한 경제학자인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사회공헌 예산을 늘리면 이윤이 줄어든다는 기존의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 같은 학계의 주장은 사회공헌과 마케팅을 결합한 '사회 마케팅'이 활성화하면서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꾀하는 '박애적 관점'의 사회공헌이 '전략적 관점'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자유의 여신상 복원 운동'이 사회 마케팅의 효시로 꼽힌다. 이 회사는 1983년 카드 수수료의 일부를 자유의 여신상을 고치는 데 사용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 캠페인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고 이 해 아멕스 카드 사용률은 27%,신규 신용카드 발행은 17% 늘어났다. 아멕스 카드의 활동 이후 사회 마케팅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1990년 1억2500만달러였던 미국 내 사회 마케팅 투자액이 2002년 8억2800만달러로 늘었다.

◆사회공헌 마케팅의 진화

사회공헌 마케팅은 형태가 다양해지는 추세다. 지난해 8월 나이키가 전 세계 25개 도시에서 나이키 고객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마라톤 행사는 업그레이드된 사회 마케팅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 대회의 특징은 참가비의 50%를 자신이 원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회공헌 활동에 관심이 있는 전 세계 마라톤 동호인들을 100만명이나 모을 수 있었다.

이 행사로 나이키는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 외에 두 가지 이익을 더 얻었다. 나이키가 제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공격한 NGO(비정부기구)들에 참가비 중 일부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비판 여론에서 벗어났다. 매출에도 보탬이 됐다.

정지혜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글로벌 기업 사회공헌 우수사례들의 공통된 특징은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는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도 사회공헌을 마케팅의 한 수단으로 보고 치밀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형석/이정선 기자 click@hankyung.com



○특별취재팀=하영춘 산업부 차장(팀장),이정선 김태훈 송형석 산업부 기자,김현석 경제부 기자,장경영 증권부 기자,노경목 건설부동산부 기자,최진석 생활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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