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으로 들어가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지역을 초월한다. 국내에서 결손가정을 돕거나 체계적인 자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해외에서도 소외 계층과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이를 통해 이미지를 제고하고 지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게 기업들의 생각이다.

◆독거노인의 '효자'가 된 LG

지난 8일 서울 은평구 녹번 재래시장.뒤켠 계단을 오르니 거미줄이 쳐진 어두컴컴한 복도 좌우로 5~6평 남짓한 쪽방 12채가 나타난다. 가장 구석에 있는 집의 문을 두드리자 허리가 구부정한 조동천 할아버지(84)가 얼굴을 내밀었다.

조 할아버지 가족은 4명.한쪽 눈이 안 보이고 거동도 불편한 할머니(81),고등학교 2학년 손자,중학교 1학년 손녀가 한 집에 산다. 며느리는 손녀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가출했다. 아들도 10여년 전 사업 실패 후 자취를 감췄다.

조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사시느냐"고 물었더니,방 바닥에 종이 한 장을 꺼내 놓는다. "전기세를 3개월 못 냈더니 전기를 끊겠다는 경고장이 왔어.손자들 학비 대기도 빠듯한데 말이야.손녀는 돈 많이 드는 수학여행을 꼭 가겠다고 조르고…." 기침을 하는 할머니의 등을 두드려준 조 할아버지가 계속 말을 잇는다. "그래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올해는 한결 나은 거야.LG가 집도 고쳐준다고 하고.올 겨울에는 애들이 따뜻하게 공부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동안 조 할아버지에게 겨울은 고통 그 자체였다. 갈라진 창 틈으로 칼바람이 들어왔다. 난방비가 없어 냉방에서 지내는 건 예사였다. 하지만 올 겨울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LG복지재단이 집을 고쳐주기로 한 덕분이다. LG는 다음 주부터 공사를 시작하기로 하고 준비작업을 마쳤다. 당장 난방용 바닥필름을 설치할 예정이다. 한 달에 2만원이면 따듯하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장비다.

벽에는 외풍을 막을 수 있는 단열재를 사용하기로 했다. 지붕과 장판도 교체한다. 도배도 새로 할 예정이다.

녹번 재래시장 옥탑방에 혼자 사는 김옥분 할머니(64)도 요즘 생기가 넘친다. LG가 집을 고쳐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11년 전 화훼 사업에 실패,신용불량자가 된 뒤 이곳으로 이사했다. 천식까지 겹쳐 외출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옥상 한켠에 채소를 키우고 햇볕을 쬐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김 할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겨울'.보증금 없는 월세 15만원짜리 옥탑방 슬래브 벽이 겨울 칼바람을 막아주지 못해서다. 지붕 한구석에 난 구멍에서도 냉기가 스며든다.

"작년엔 11월에 감기가 걸려 올 4월까지 고생했어.올 겨울엔 LG 덕에 감기 고생은 면할 것 같아.집이 고쳐지면 그동안 못 불렀던 친구들도 초대할 거야."

조 할아버지와 김 할머니가 따듯한 겨울을 날 수 있게 된 것은 LG복지재단이 펼치고 있는 '따뜻한 집 만들기'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된 덕분이다. LG는 녹번 종합사회복지관의 추천을 받아 두 어르신의 집을 고쳐주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은 독거노인,장애인,조손 가정 등 어려운 소외 계층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2000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꼭 10년째다. 그동안 LG복지재단이 수리해 준 집은 1500여채.올해도 조 할아버지의 집을 포함,107가구의 겨울나기를 돕는다.

◆베트남 어린이의 웃음 찾아준 SK텔레콤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길.윗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진 아이들이 눈에 띈다. '언청이'로 불리는 구순구개열 환자들이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차로 6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중북부의 탱화성(省).다른 지역에 비해 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 정도로 고통을 겪는 구순구개열 환자가 많은 지역이다. 이곳 가구의 월 소득은 한국 돈으로 3만원 미만.하루 먹기도 빠듯하다 보니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곳에서 만난 올해 7살난 쩐 티 타오는 성격이 활발했다. 약간의 흔적만 있을 뿐 입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가 정상을 찾은 것은 2년 전.SK텔레콤의 자원봉사단이 머나먼 이곳까지 날아와 무료 수술을 해준 덕분이다. 쩐의 어머니는 "전에는 밥도 제대로 삼키지 못해 발육이 더뎠는데 수술 후 부쩍 큰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9살난 당 티우 응언은 올해 수술을 받고 정상을 되찾았다. 그에게 반가운 손님이 온 것은 지난 6월.SK텔레콤 봉사단은 탱화성 어린이병원에 캠프를 차리고 9일간 어린이 환자를 수술했다. 하루 수술했던 환자는 20여명 안팎.한국과 현지 베트남 의료진 108명을 총동원해 냉방 시설도 없는 수술실에서 하루 12시간씩 수술한 결과였다. 일손이 모자라 일반인까지 도우미로 가세해 올해만 200여명의 어린이에게 웃음을 되찾아줬다.

SK텔레콤은 베트남에서 어린이들의 얼굴 기형을 고쳐주는 이국(異國)의 천사로 유명하다. 백롱민 박사(분당 서울대병원 부원장)가 이끄는 세민얼굴기형돕기회와 함께 올해로 14년째 베트남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언청이'라 불리는 어린이 얼굴 기형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자 1996년 첫 활동을 시작했다.

구순구개열은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동양인에게 특히 많이 발생하는 안면 기형이다. 베트남에서만 안면 기형 환자가 10만명이 넘는다. 아이들에게 구순구개열은 단순히 얼굴 기형에 그치는 게 아니다. 절박한 생존의 문제다. 윗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져 있다 보니 아기 때 젖을 빨아도 모두 입 밖으로 흐른다. 밥을 먹어도 음식이 입천장을 통해 코로 나오기 일쑤다. 제대로 먹지 못하다 보니 발육이 느리다. 이런 그들에게 SK텔레콤의 지원을 받은 한국 자원봉사단의 방문은 가뭄 속 단비보다 반가운 소식이다.

SK텔레콤 봉사단의 슬로건은 '베트남 어린이에게 웃음을'이다. 슬로건에 걸맞게 14년 동안 건강한 웃음을 되찾은 어린이가 2800명이 넘는다. 일찍 수술을 받은 어린이 중에는 벌써 성인이 돼 결혼까지 한 사람도 있다.

SK텔레콤은 매번 무료 수술에 사용한 수술장비를 비롯해 의약품 등을 현지 병원에 기증한다. 봉사단이 떠난 이후에도 현지 병원에서 기형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생큐,SK텔레콤"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하다.

탱화성(베트남)=김태훈/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