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우울한 세계경제전망보고서(WEO)를 발표했다. 각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회복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위기는 2차대전 이후 경제학 및 정책을 이끌어온 양대 패러다임의 한계를 보여줬다.

첫째,시카고학파로 대변되는 시장방임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위기의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시장에 대한 과도한 신뢰에 기반한 규제 완화였다. 1999년 미 의회는 은행전업주의를 강조하는 글래스-스티걸 법안을 폐지시켰다. 2000년에는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금지하는 상품선물현대화법을 통과시켰다. 대가는 컸다. 시장은 자기조절 기능을 잃었다. 이윤 추구가 과열되면서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위협했다.

둘째,케인스학파가 주창해온 정부중심 주의의 맹점도 부각됐다. CNN에 따르면 9월 현재 미국 정부는 11조달러에 달하는 구제 금융을 마련했다. 천문학적인 재정 투입을 하기로 한 것은 금융 시스템의 마비를 막고 파산한 민간 기업들을 인수하는 한편 경기 부양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실업률은 내년에 10%대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패러다임의 한계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전에도 지적된 바 있다. 정부중심 주의의 맹점은 이미 1970년대에 나타났다. 재정 투입을 통해 정부가 경제를 운영하되 재정 건전성이 위협받을 때는 세금을 더 걷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접근법은 파국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런 정책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야기했다. 세계화의 파급 효과를 경시했기 때문이다. 고용을 창출하고 나라의 곳간을 채워주는 주체인 기업들이 조세 부담이 높아지면 세금이 낮은 나라로 떠나가버린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2000년대에는 시장 방임주의의 부작용이 부각됐다. 1985년 이래 미국 정부는 자동차 연비 규정을 강화하는 것을 미뤄왔다. 자동차 업계와 노조,그리고 업계가 위치한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연비 기준 강화는 일자리 손실과 이윤 감소를 불러온다고 주장했다. 규제 완화는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는 차량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해 연비가 뛰어난 외제차들에 시장을 내주게 되고 자멸의 길을 걸었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선 학계는 경제학 교육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시장 방임주의와 정부 중심주의를 뛰어넘는 거시 경제 이론을 모색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학부 때부터 기성 이론의 논리와 주장에 익숙해져 있다. 로버트 루카스나 폴 크루그먼 등 양대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학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들의 입장이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다. 이럴 때일수록 패러다임의 창시자인 밀턴 프리드먼과 존 M 케인스도 기존 경제 이론이 현실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에 착안해 새로운 시각을 만들었다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둘째,정책 입안자들의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다. 경제 위기는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앞서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단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산업화 초기에 선배 관료들이 했던 것에 버금가는 창조적 사고가 요구된다. 당시 관료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정책과 제도를 잇따라 창안해냈다. 재정 팽창이 만병 통치약이라거나 규제 완화가 절대선이라는 통념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의 현실에 가장 적합한 정책 대안을 고안해 내야 한다.

학계와 정책 관계자들이 하나가 돼 글로벌 경제 위기를 한국식 경제 선진화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먼 훗날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우리 경제에는 전화위복의 계기였다고 회고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윤계섭 서울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