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미국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과잉소비와 중국 일본 등의 과잉생산에 따른 '불균형(imbalance)'이란 게 일반적 분석이다. 리먼 파산 1년여가 지난 지금 세계경제의 불균형은 얼마나 해소됐을까. 미국 달러화에 의존한 세계경제 체제는 위기 이후 어떤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는가.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주창한 동아시아 공동통화는 실현이 가능할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일본 국제금융계의 대부인 교텐 도요오 국제통화연구소 이사장(78)을 지난 10일 도쿄 집무실에서 만났다. 한 달의 절반 이상이 해외 출장인 교텐 이사장은 "세계경제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세계경제 안정을 위해선 중국이 환율 자유화를 통한 위안화 절상 등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며 '중국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이기도 했던 세계경제의 불균형은 얼마나 개선됐다고 보나.


"20% 정도나 개선됐을까? 아직 본격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 소비자들은 주식과 부동산 등 보유자산 가격이 떨어지고 소득이 감소하면서 소비를 줄이고 있긴 하다. 2007년 마이너스로 떨어졌던 저축률은 최근 5%선까지 회복됐다. 가계 부문의 과잉소비는 분명히 줄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더 커졌다. 정부 부문의 과잉소비는 더 심각해진 것이다. 전체적으로 과잉소비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과잉생산국들은 어떤가.

"마찬가지다. 중국 일본 독일 등 무역흑자국들은 미국 경기 침체로 수출이 격감했다. 그런데도 무역수지는 계속 흑자를 내고 있다. 내수 부진으로 수입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수출 증가율은 줄었지만 수출과잉 상태가 크게 개선된 건 아니다. 이런 나라들은 경제구조가 수출에서 내수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하기 어렵다. 당분간은 무역흑자 체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

▼세계경제 불균형 해소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미국은 과잉소비를 억제하면서 소비재 산업을 활성화시켜 수입을 줄이고,수출을 늘리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재정적자도 서둘러 줄여야 한다. 민간과 정부 부문 전체에서 소비과잉 체제를 바꾸는 근본적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정부가 작정만 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중국 일본 등 무역흑자국들은 내수를 키우는 데 더 신경 써야 한다. 특히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새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 고령화로 인해 노인간호 등 새롭게 만들어 낼 시장이 많다. 지금까지는 각종 규제로 새로운 서비스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 이것을 개선해야 한다. 일본은 또 수출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 이번 경제위기에 일본이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본 건 수출구조가 미국이라는 특정 시장에,그것도 자동차 전자 등 특정 업종의 대기업들에 편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

중국은 위기 이후에도 연간 8% 성장을 지속하고 있고,막대한 무역흑자 덕분에 2조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다. 중국이야말로 수출주도 성장 모델을 바꿔야 하지 않나.

"맞는 지적이다. 제일 중요한 건 중국 스스로 내수를 키우고 위안화 가치를 절상하는 것이다. 중국의 내수시장은 지금까지 도시 중심으로만 발달했다. 이를 농촌지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현재 3000달러 정도인 1인당 국민소득을 더 높여야 한다. 연금 의료 등 사회보장제도 체계도 정비해야 한다. 또 위안화 가치를 절상해 현실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수출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어 과도한 무역흑자를 줄일 수 있다. "

▼위안화 절상을 위해선 환율변동체제를 더 유연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당연한 말이다. 중국은 환율변동시스템을 즉각 자유화하면 수출이 급감해 산업기반이 붕괴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큰 방향으로 봐선 환율변동과 자본유출을 자유화해야 한다. 지금 같은 체제에선 수출의존 산업구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내수도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지금 체제에선 무역흑자로 달러가 국내에 계속 쌓이고,너무 많이 쌓여 그게 세계경제의 불안요인이 된다. 또 중요한 건 위안화 환율이 자유화되지 않으면 영원히 국제통화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세계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달러에 의존한 세계경제 시스템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나.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미국 경제의 영향력은 점차 약해질 게 분명하다. 달러의 위상도 떨어질 것이다. 문제는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가 무엇이냐다. 현재로선 뚜렷한 후보가 없다. 이게 최대 문제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세계 기축통화는 영국 파운드화에서 미국 달러화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당시 영국에 이어 미국이란 강대국이 급부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러가 지고 있는데 대체 후보가 떠오르지 않고 있다. 국가로 치면 현 지도자의 힘이 약해지고 있지만 뒤이어 강한 지도자가 나오지 않아 결과적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

▼유로화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나.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 중 달러 비중은 과거 최고 80%에서 최근 63%로 떨어졌다. 반면 유로는 25%로 늘어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은 유로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 의지가 없다. 기축통화가 되면 이점도 있지만 달러처럼 여러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

▼위안화나 엔화가 후보가 될 가능성은.

"새 기축통화가 나오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파운드에서 달러로 기축통화가 바뀔 때도 과정은 순조로웠지만 50년 이상 걸렸다. 미국의 국력이 영국을 넘어선 건 19세기 말이지만 달러가 기축통화로 굳어진 것은 2차대전 직후다. 위안화 엔화는 현재로선 가능성이 전혀 없다. 50년 후쯤엔 어떨지 모르지만….50년 후 중국 경제규모가 미국을 뛰어넘고 위안화가 자유화되고,세계경제의 리더라고 받아들여지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길지 말지는 누구도 모른다. "

▼기축통화 후보가 없다면 달러를 계속 뒷받침해야 하나.

"그렇다. 지금 미국을 향해 경제정책을 제대로 하라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기축통화를 갖고 있는 미국의 경제정책이 잘못되면 세계경제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있다. "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동아시아의 공동통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긴 방향으로 보면 맞다.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와 이번 금융위기의 공통점은 아시아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컸다는 점이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릴 만큼 제조업이 강하다. 그러나 금융은 자립하지 못하고 있다. 수출입 결제를 대부분 달러로 하다 보니 미국과 유럽의 금융회사들이 들어와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 각국은 공동통화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 하지만 공동통화를 만드는 게 쉽진 않다. 유럽이 유로를 만드는 데도 50년 이상이 걸렸다. 그나마 유럽은 아시아에 비해 여건도 좋았다. 긴 장래를 보고 아시아 각국은 협력하지 않으면 자립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하고 한발씩 물러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

▼하토야마 총리는 미국과의 '대등한 외교'를 주장하며 동아시아 중시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과 대등한 외교를 주장하려면 아시아 내 의견 대립을 해소하는 게 먼저다. 아시아 내 대립이 없어지면 미국에 의존할 필요성이 줄게 된다. 내부 결속도 하지 않은 채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겠다고 하는 건 무리다. 미국 시장은 크고 금융과 달러의 힘은 여전히 강하다. 군사력도 그렇다. 아시아가 힘을 모아 자연스럽게 미국에 의존할 필요성을 줄이는 게 순리다. "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