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인종적 차이로 군 입대 막는건 잘못"

반 "사고위험 · 軍인사 부담등 부작용 클것"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의 현역 입대를 의무화하는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국회가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제1국민역(신체검사 또는 입영대상자)으로의 편입 제한 등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병역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제출한 것을 놓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혼혈인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촉구해 온 시민단체 등에서는 "혼혈인은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피부색이나 외모 인종 등을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아왔다"며 이번 조치는 당연한 일이라며 크게 반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혼혈인에 대한 '왕따 문화' 등 부정적인 인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현역입대 의무화는 상당한 부작용을 몰고 올 것"이라며 우려한다.

혼혈인들이 불이익이나 고통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전까지는 보호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병역면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굳이 병역법 규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병역 의무 및 지원은 인종과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혼혈인 가운데 외모상 큰 차이가 없으면 현역으로 입대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문제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까지 과연 현역으로 입대시키는 게 바람직하냐는 점이다.

인종과 피부색으로 인해 병역 수행에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은 징병검사 없이 제2국민역(병역 면제 · 전시 근로동원)에 편입될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혼혈인의 현역 입대 허용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인종적 차이로 인해 군 복무 기회 박탈해선 안 돼"

혼혈인 현역 입대 의무화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혼혈인을 군대에 못 가게 하는 병역법은 핏줄로 사람을 구분하는 차별조항이므로 즉시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든지 국방의무를 다해야 하는 만큼 인종적 차이가 군 입대 배제조건이 되어선 결코 안 된다는 얘기다.

현행 병역법 규정은 혼혈인들에게 군 복무 기회를 박탈하고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인 만큼 이번 개정안 제출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혼혈인을 외관으로 구분하는 병역법은 주관적이며, 특히 아버지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신체검사조차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지촌 출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혼혈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처음부터 군대에서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이들의 현역 입대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여러 문화권의 인종적 배경을 가진 혼혈인이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동일한 군복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반대 측, "입영자 위험부담 군인사관리 부담 등 문제점 더 많아"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혼혈인의 병역 면제는 이들이 외관상 이유로 군대에서 겪을 따돌림과 부적응 등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혼혈인에 대한 현실적인 차별 개선이 이뤄지고 국민들도 피부색에 대한 차별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입영카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영어가 수월한 혼혈인에 한해 카투사 쪽으로 가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토익 등의 고득점을 요구하는 것은 큰 장벽"이라며 이들의 현역 입대 지원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병역의무 이행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동일체 의식을 함양하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법률 개정만으로 혼혈 차별에 대한 모든 문제가 해소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흑 · 백인계 혼혈인의 입영은 차별 폐지에 따른 이점보다는 사고 발생시 입영자의 위험부담과 군 인사관리 부담 등의 문제점이 오히려 더 클 것이라는 얘기다.

혼혈인이 고통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때까지는 병역을 면제해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 혼혈인에 대한 편견 버리고 유 · 무형의 차별 없애야 할 것

근래 들어 혼혈인에 대한 인식이 다소 개선되기는 했지만 이들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 시각은 여전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혼혈인들이 병역 면제 등 한국인으로서 정체성과 동질성을 박탈당하는 일이 지속돼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로 다문화 사회로 전이되고 있다는 데 있다.

다양한 혼혈인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 등 모든 면에서 동일한 처우를 해줘야 하며, 특히 남자들의 경우 동등한 군 복무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만약 혼혈인 수가 크게 늘어난 상태에서 그들에 대한 병역 의무 면제가 지속된다면 비혼혈 젊은이들로부터 '역차별'이라는 반발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군 당국은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본격 입대하면서 일어나게 될 병역환경의 변화에 미리부터 철저히 대비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국민들도 혼혈인에 대한 유 · 무형의 차별적 시선을 버려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혼혈인

서로 인종이 다른 부모에 의하여 태어난 자녀에게 양쪽의 형질이 섞이는 일 또는 그 혈통을 말한다. 인종이 서로 다른 두 종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일컫기도 한다. 코시안(Kosian)은 한국인(Korean)과 아시아인(Asian)의 합성어로, 한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 또는 아시아 이주노동자의 자녀를 말한다.

제1국민역

병역 종류의 하나로, 병역의무자로서 현역 · 예비역 · 보충역 또는 제2국민역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 만 18세 이상의 병역의무자로 현역 의무나 병역 면제를 받기 이전 한시적 기간의 병역의무자를 가리키는 용어다.

제2국민역

징병검사 또는 신체검사 결과 현역 또는 보충역 복무는 할 수 없으나 전시근로소집에 의한 군사지원업무는 감당할 수 있다고 결정된 사람 또는 병역법에 의하여 제2국민역에 편입된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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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9월 30일자 보도기사

국회에서 병역법 중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을 제2국민역(병역면제 · 전시 근로동원)에 편입하게 된 조항을 삭제,이들의 병역을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30일 밝혀졌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유승민 의원(한나라당)은 여야 의원 23인과 공동으로 지난달 25일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제1국민역(신체검사 또는 입영대상자)으로의 편입 제한 등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병역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은 통상적으로 흑 · 백인계 혼혈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제1국민역에 편입되는 아시아계 혼혈인과 구분된다.

지난 2005년 개정된 병역법은 '외관상… 혼혈인'과 귀화자가 면제 출원에 의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지원시 입영이 가능하게 돼 있다.

유 의원 등은 제안 이유에서 "'병역 의무 및 지원은 인종과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된다'는 규정(병역법 3조3항)에도 불구, 동법 65조는 '인종과 피부색으로 인해 병역수행에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에 대해 징병검사 없이 제2국민역으로 편입할 수 있게 해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제안 이유서는 또 "인종 ·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받게 만든 조항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에 위배되고 혼혈인 중 아시아계와 흑 · 백계를 나눠 차별하는 인종차별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보충역이나 제2국민역에 편입하게 돼 있는 규정(65조1항 제4호)을 삭제한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부칙에 "공포 후 3개월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고 명시돼 있어 10월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빠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외관상… 혼혈인'들도 군 복무가 의무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