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나라살림 규모가 291조8000억원으로 짜여졌다. 성장 정책 기조를 이어가면서 재정건전성도 도모하느라 올해 본예산보다는 2.5% 늘리고 추가경정예산에 비해선 3.3% 줄였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런데 내년 경제운용이 과연 계획대로 맞아 들어갈지 벌써부터 의구심이 밀려든다. 예산안의 전제 조건들에 대해 공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정부는 내년도 성장률을 4%로 잡았다. 우리 경제가 세계 최고 수준의 회복세를 보이고 세계경제도 금융위기에서 탈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이 이런 전망의 배경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물론 많은 국내 연구기관들이 3%대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높게 잡혔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다만 KDI 등 일부 기관과 외국금융사들 중 4% 이상을 전망하는 곳들도 있으니 납득할 만은 하다.

그러나 환율 전망은 생뚱맞다는 느낌조차 든다. 정부 전망은 달러당 1230원으로 요즘 시세보다 60원가량 높다. 대규모 무역흑자가 지속되고 외국인 주식매수자금도 유입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하락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일반적 관측과는 동떨어진 예상이다. 금융위기 이전인 참여정부 말기의 환율이 달러당 1000원 선을 밑돈 것이나 글로벌 달러 약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의 설명은 이러하다. 예산을 편성할 때의 기준 환율은 전망치가 아니라 실적 환율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대개 최근 3~6개월간의 환율을 사용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환율 변동성이 심해졌기 때문에 이번엔 최근 두 달 환율을 평균해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의 말처럼 금융위기로 인해 변동성이 심한 상태에서 형성된 실적 환율을 관행이라 해서 그대로 기준 환율로 삼은 것은 아무래도 수긍하기 어렵다.

유가를 배럴당 63달러로 내다본 것도 논란의 소지가 많다. 최근의 유가는 정부 전망치와 비슷한 수준에서 오르내리고 있지만 세계경제가 예상대로 호전된다면 유가도 오름세를 탄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정부가 낙관적이란 사실은 민간 기업들의 전망치와 비교해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언론사들의 조사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들은 내년도 환율을 달러당 1100~1150원 선, 유가는 배럴당 80~90달러 선으로 내다보며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고 한다.

경제전망은 물론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오차가 너무 커서는 곤란하다. 그럴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는 올해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지난해 정부는 올해 예산을 편성하면서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에도 불구하고 성장률 전망치를 7.4%로 잡았다. 실제 성장률 -1.5%(정부 예상치)와는 천양지차다. 28조4000억원에 이르는 슈퍼 추경을 편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연유다. 재정확대 정책의 필요성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이 중 11조2000억원은 과도하게 잡혔던 세수계획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의 공식 경제전망이 이처럼 엉터리였다는 사실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첫해부터 '747 공약'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고,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쳤으니 눈감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년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금융위기의 영향이 눈에 띄게 약화된 상황에서 상식적 범위를 넘어선 오류는 용납되기 힘들다. 또다시 대규모 추경을 편성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국가채무관리 차원에서도 예삿일이 아니다.

그래서 올해 정기국회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낙관적 전망 아래 짜여진 예산안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 까닭이다. 그런 만큼 국회는 불요불급한 지출을 최대한 축소하는 등 세출구조조정에 전력을 다해주기 바란다.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